렌터카社 "고유정과 무관" 호소문
‘고유정 화학과 출신’·’전 남친 실종’ 루머… "사실 아니다"
고유정과 현 남편 공범說까지 등장…경찰 "가능성 0%"
경찰, "허위사실 유포하면 명예훼손 처벌"
17일 오전 제주시의 A렌트카. 이 회사 건물 유리창에는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호소문엔 "최근 고유정의 엽기적 살인사건으로 인해 고유정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업체에 대한 항의성 댓글 및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억울하게도 같은 지역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고유정의 아버지 업체가) A렌트카로 이름을 바꿔 꼼수 영업을 한다’는 허위 및 악성댓글이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런 루머 탓에 항의 전화가 하루 30~40통씩 걸려오고, 직접 찾아와 따지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한다. A렌트카 대표 현모(55)씨는 "20년 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고유정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여름 성수기 한철로 먹고사는데 회사와 상관도 없는 고유정 이미지가 덮어씌워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에는 제주서부경찰서에 루머를 유포한 네티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현씨는 "직원들과 함께 ‘사실이 아니다’라는 댓글도 달아봤지만, 루머가 퍼지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17일 제주시 A렌트카 건물에 “우리 회사는 고유정 사건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호소문이 붙어있다. /제주=권오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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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고유정을 둘러싼 각종 루머가 확산하고 있다. 고유정 집안의 지역 유지설(說)에 이어 고유정 전 남자친구 실종설, 고유정 화학과 출신설 등이다.
이런 루머 때문에 2차 피해도 생기고 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고유정을 둘러싼 각종 루머의 진실을 알아봤다.
◇‘고유정 집안’은 지역 유지?…회사 운영했지만 이미 매각
A렌트카가 ‘제주 전(前) 남편 살인사건’의 피의자 고유정과 관련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배경엔 고유정 아버지가 제주에서 사업체를 운영한 지역 유지라는 소문 때문이다. 그러나 고유정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업체는 얼마 전 다른 회사에 매각됐고, 현재는 간판이 사라진 상태다.
피해자인 전 남편 강모(36)씨의 유족도 언론 인터뷰에서 "(고유정이) 돈 많은 재력가 집안이어서 좋은 변호사를 써 제대로 처벌받지 못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 가운데 피해자 유족의 인터뷰까지 겹치면서 지역 사회에선 고유정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루머까지 퍼졌다.
제주에 사는 직장인 이모(31)씨는 "도민들도 (고유정 아버지 회사가) 어디 업체인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안다"며 "다른 사건에서 범인들이 제대로 처벌 안되는 경우를 많이 봤던 만큼 주변 사람들이 미리 걱정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일 경찰이 경기도 양주시 폐기물처리장에서 고씨의 전 남편 강모씨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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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친 실종설, 화학과 출신 고유정…‘거짓’
"고유정의 전 남자친구도 실종됐다"는 루머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성 실종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고유정과 관련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고유정이 졸업한 대학과 동문회 등을 통해서도 경찰이 확인했지만, 근거 없는 루머였다고 한다.
고유정이 화학과를 나와 피해자 강씨의 유해에서 유전자(DNA)가 검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는 것도 근거 없는 소문으로 확인됐다. 고유정은 화학과가 아닌 다른 이공계 전공이었던 것이다. 고유정이 졸업한 대학 역시 "고유정이 화학과 출신이란 일부 언론 보도는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 루머는 경찰이 지난 5일 인천 서구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전 남편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을 발견했을 당시, 크기가 3cm로 잘게 잘라져 있고 고열 처리된 상태라는 발표와 맞물려 불거졌다.
경찰은 그러나 피해자 뼈로 추정됐던 물체가 잘게 분쇄된 이유는 중간에 '소각장'에서 파쇄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뼈가 탄화(炭化)상태인 것도 소각장에서 500도~600도의 고온에서 가열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이 뼈 역시 국과수 감정 결과 ‘미상의 동물 뼈’로 밝혀졌다. 현재 경찰은 국과수에 박스 2개 분량의 뼈를 추가로 긴급감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앞서 국과수에 넘긴 뼛조각과 마찬가지로 고온 처리된 것이어서 DNA 검출이 안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고유정과 피해자 강씨가 캠퍼스커플(CC)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봉사동아리에서 만나, 6년여간 사귀며 해외봉사를 가거나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유정은 전 남편과 2년 전 이혼한 뒤, 현 남편 A(37)씨와 재혼했다.
지난달 29일 피의자 고유정이 인천의 한 가게에서 시신 훼손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방진복, 덧신 등을 사고 있다.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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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과 현 남편 공모?…경찰 "가능성 0%"
현 남편 A씨가 지난 13일 제주지검에 자신의 아들인 B(4)군을 고유정이 살해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당시 고유정이 A씨에게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먹이고, 의붓아들 B군을 살해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A씨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아들 사망 전날 내가 깊이 잠이 든 것에 의문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전 남편인 피해자 강씨의 혈흔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던 것과 맞물려 의혹이 증폭됐다.
하지만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국과수가 A씨의 체모를 채취해 감정한 결과 졸피뎀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졸피뎀 성분이 최대 1년까지 검출된다는 점에서 고유정이 A씨에게 수면제를 몰래 먹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B군의 사망이 범죄에 연관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다.
A씨가 경찰조사에서 "눈을 떴을 때 아들의 몸 위에 자신의 다리가 올라가 있었다"고 진술했다는 소문도 거짓으로 확인됐다. 국과수가 지난달 B군을 부검한 결과 사인(死因)을 ‘질식사’로 밝혔을 뿐,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실제로 B군 사망 당시 출동한 구조대 기록에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다. ‘B군의 코 주변과 이불에 혈흔이 있었고, 현장 도착했을 때 부모가 심폐소생술(CPR) 중이었다’ 등의 내용만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조사 진술내용에도 "내 다리가 (아이의 몸에) 올라가서 그랬는지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도의 말만 있을 뿐이다. 청주상당경찰서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아직 아버지의 신분은 ‘참고인’"이라며 "수사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심지어 고유정과 현 남편 A씨의 공범이라는 의심까지 나왔다. 청주상당경찰서 측은 "수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유는 밝힐 수 없으나 공범 가능성은 0%"고 밝혔다.
12일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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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 "허위사실 유포 처벌받을 수 있어"…계획범죄 입증 주력
경찰은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급속히 퍼지자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이 사건과 관련, "피의자나 피의자 가족의 신상정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범행 수법 등을 게시·유포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소셜미디어 등에 관련 정보를 게시·유포하는 것을 삼가 달라"고 공식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건인 만큼 더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근거 없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고유정은 현재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우발범죄’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정은 최근엔 범행 과정에서 다친 것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오른손에 대해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했다. 성폭행을 시도하는 전 남편에게 대항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이 다쳤다며 우발범죄를 향후 검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입증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고유정이 범행 전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범죄수법 등을 검색해봤고, 미리 흉기와 청소도구까지 구매한 점 등을 토대로 계획범죄로 보고 있다. 사건을 넘겨받은 제주지검도 고유정이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강력검사 4명으로 구성된 전담 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고유정이 피해자 강씨에게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를 어떻게 투약했는지 등을 분석 중이다.
[제주=권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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