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행동 부추겨 상황 반전 노렸나?
람 장관, “강력 비난…끝까지 추적해 엄단”
유례없는 의사당 점거, 홍콩 시민사회 엇갈린 반응
“시위 정당성 떨어뜨려” vs “오죽 하면 저렇게까지”
외신, “지도부 없는 시위, 시위대 내부 의견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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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입법회 의사당 점거 사태로 홍콩의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유혈사태는 피했지만,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과격한 행동’에 대한 평가를 놓고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잇따른 대규모 시위로 위기에 몰렸던 홍콩 정부가 여론 반전을 위해 의사당 점거 시도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덫’을 놓은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홍콩의 중국 반환 22주년을 맞아 전날 열린 도심 행진에는 55만여명(주최 쪽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행진이 시작되기 전부터 입법회 주변으로 몰린 청년층 시위대는 유리 출입문을 부수고 이날 밤 9시께 입법회 의사당으로 진입했다. 의사당 점거 시위는 경찰 진압병력이 투입된 이후인 2일 새벽 1시께 마무리됐다. 경찰이 진입하자 시위대가 해산하면서 큰 충돌은 피했다.
유례없는 의사당 점거 시위에 대한 홍콩 시민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에선 “도를 넘은 과격한 행동으로 시위의 정당성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홍콩 정부에 탄압의 명분만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면 “폭력에는 반대하지만, 청년들이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했겠느냐”는 동정론도 적지 않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입법회 시위대 내부에서조차 점거파와 철수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특정 지도부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동시 다발적으로 행동에 나선 최근 홍콩 시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지도부가 없다 보니, 시위대 내부에서 목적과 전술을 두고 의견 충돌이 생긴 것”이라고 짚었다.
시위대가 의사당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보인 경찰의 석연찮은 태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오후 내내 입법회 진입을 시도하는 시위대를 막아섰던 경찰은 시위대의 의사당 진입 직전 돌연 철수해, 사실상 시위대에게 길을 터준 꼴이 됐다.
홍콩 경찰은 지난달 12일 고무탄까지 퍼부으며 시위대를 강경·유혈 진압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요구가 들끓었던 터라, 여론 반전을 위해 경찰이 시위대를 의사당 점거란 ‘함정’으로 몰고 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스티븐 로 경찰청장은 “8시간가량이나 시위대와 맞서 입법회를 보호했다. 일시 철수한 뒤 전열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함정설’의 실체는 파악할 수 없지만, 홍콩 정부가 이를 상황 반전 모색의 계기로 삼으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일 새벽 4시께 기자회견을 자청해 “입법회에서 벌어진 폭력과 무법 사태는 홍콩 법체계의 핵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엄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사당 진입 점거 시위를 벌인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예고한 셈이다. 람 장관은 시위대가 입법회 의사당에 진입한 직후 범야권이 중재를 위해 요청한 대화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특별행정구 연락판공실 쪽도 이날 담화를 내어 “1일 입법회 건물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경악하고 분노한다. 홍콩 특별행정구가 심각한 위법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을 굳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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