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본 ‘고유정 사건’의 전말
②살인에 사체은닉까지...前 남편, 왜 지우고 싶었을까
"XX놈" "XX쓰레기" "저 XX는 진짜 내 인생의 XX" "저런 XX집안하고는 다신 엮이지 않도록 XX싶다" "OO이도 그쪽 집과는 XX 만들고 싶다"...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은 지난 2017년 이혼 과정에서 강씨에 대해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고 검찰이 밝혔다. 2013년 6월 결혼한 두 사람은 2016년 11월부터 이혼소송에 들어가 7개월여 만인 이듬해 6월 이혼했다. 4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단독 입수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이혼조정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들 부부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는 여러 대목이 나온다. 검찰 역시 고유정의 범행 동기를 결혼생활의 파탄, 새로 꾸린 가정에 대한 애착 등 ‘가정’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잔인한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돼 버린 고유정. 그는 왜 그렇게 전 남편을 세상에서 지우고 싶었을까.
고유정이 범행 사흘 후인 지난달 28일 오후 범행 전 구입했던 락스세제 등 청소용품 일부를 환불하고 있다. 제주동부서가 확보한 CCTV에 찍힌 고유정.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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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꼭 3년 만에 사실상 파탄 지경에 빠졌다. 그 사이 아이도 낳았지만 부부는 2016년 6월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5개월 뒤 전 남편 강씨가 먼저 이혼소송을 걸었다. 아내인 고가 폭력을 휘두르고, 자해(自害)를 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고도 2017년 3월 강씨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육아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조정 절차를 통해 합의 이혼을 하도록 했다. 당시 두 사람은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엄마가 갖고, 아빠는 매달 양육비를 주기로 했다. 특히 매월 첫째주·셋째주 토요일, 하루 8시간씩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 조건에도 합의했다.
그러나 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혼 후 살던 집에서 나가 재산분할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이사를 가지 않은 채 버텼고, 이 때문에 다툰 것을 문제삼아 아이도 못 만나게 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이혼한 지 5개월쯤 뒤인 2017년 11월 A(37)씨와 재혼했다. 아이는 친정에 맡겨둔 채 이듬해 6월부터 새 남편이 살고 있던 청주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결혼 3년 만에 파탄…이혼 조건 무시한 채 재혼
법원의 ‘면접교섭’ 판결 나자 모든 상황 꼬여
檢 "前남편은 증오의 대상…사라져야 새가정 지킨다고 본 듯"
그러자 전 남편 강씨는 작년 10월 다시 법원에 ‘면접교섭권 이행명령' 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 사건으로 고에게 3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그는 모두 거부했다. 이 때문에 법원으로부터 과태료 처분도 받았다. 결국 지난 5월 9일 법원에 출석해 강제로 아이를 만나게 해 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1차로 5월 25일 아이가 살고 있는 청주에서, 2차로 6월 8일 강씨가 사는 제주에서 각각 면접교섭을 한 뒤, 6월 10일 가족 모두가 법원에 나와서 면담을 진행하자고 결정했다. 평소 아이가 전 남편의 가족과 엮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법원 판결로 무너지게 된 것이다. 검찰은 "고유정이 이혼 과정에서 증오의 대상이 된 강씨에게 평생 아들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아들과 강씨가 평생 엮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씨의 법적 대응 때문에 무산되자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동부경찰이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범행 후 5월 27일 범행 장소 인근 클린하우스에 버린 종량제봉투 내용물을 찾기 위해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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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새로 꾸린 가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는 아이에게 재혼한 A씨를 친아버지라고 알려주는 등 아이를 A씨의 친자식처럼 키우며 새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고는 그동안 아이에게 전 남편 강씨를 ‘삼촌’이라고 가르쳐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법원의 면접교섭 결정으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온 사실과 전 남편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고는 또 이즈음 재혼한 A씨와 자주 다투게 됐고, 지난 3월 의붓아들(5)이 숨지는 사건까지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 남편 강씨와 아이의 주기적인 만남을 가져야한다는 데 큰 부담을 가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측은 "전 남편과의 면접교섭 때문에 A씨와 불화를 겪게 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해 전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법원 조정절차를 마친 다음날인 5월10일부터 16일까지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졸피뎀’ ‘제주 키즈펜션 무인’ ‘니코틴 치사량’ ‘혈흔’ 등에 관한 내용을 검색하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정은 지난달 25일 ‘면접교섭’을 빌미로 전 남편 강씨를 제주도 한 펜션으로 데려가 수면제를 섞은 카레 등 음식물을 먹인 뒤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또한 강씨의 시신을 훼손해 바다와 쓰레기분리수거장 등에 나눠 버린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아직까지 숨진 강씨의 시신을 일부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고 역시 시신을 버린 정확한 위치 등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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