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에서 설립된 '스티치픽스(STICH FIX)'는 개인맞춤형 의류 추천 및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서비스 가입회원들이 수수료 20달러를 내고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 사이즈, 예산 등을 입력하면 집으로 5가지 의류 및 액세서리를 보내주는 '구독 경제'가 기본 사업 모델이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으면 반품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라도 구매하면 수수료 20달러를 깎아준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경쟁이 치열한 대표 레드오션인 패션 산업에서 스티치픽스는 창업 7년 만인 2018년 매출 12억3000만달러, 순이익 4500만달러, 고객 270만명을 확보했다.
스티치픽스가 성공한 비결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아마존닷컴에서 저렴한 옷을 골라 사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티치픽스는 옷을 고를 시간이 없거나 귀찮은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꽤나 정확히 골라서 보내준다. 처음 5벌을 보낸 고객일지라도 80%가 최소 1벌을 구매할 정도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스티치픽스 추천이 높은 정확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핵심 인재인 '에릭 콜슨(Eric Colson)' 스티치픽스 최고알고리즘관리자(CAO·Chief Algorithm Officer)가 있다. 에릭 콜슨은 오늘날 넷플릭스의 성공을 가능케 한 영상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한 주역이다. 2012년 에릭 콜슨을 영입한 스티치픽스는 수백 개의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으로 개인 선호 스타일, 패션 트렌드, 최적 스타일리스트 배정, 고객 만족도, 물류 및 구매 상품 명단과 규모 등을 결정한다. 이 같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스티치픽스는 추천 패션 상품 선정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알고리즘이 전적으로 추천하는 넷플릭스와 달리 스티치픽스는 3000명이 넘는 스타일리스트가 일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추천한 결과에 전문가의 손길이 덧대어져 최선의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데이터 주도 의사결정 vs AI 주도 의사결정…차이점은 '프로세서'에 있어
최근 많은 기업들이 의사결정에 데이터와 AI를 활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인공지능 기반' 의사결정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고 접근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에릭 콜슨 스티치픽스 CAO는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디지털판에 기고한 글을 통해 "데이터 중심 의사결정과 AI 중심 의사결정을 구분해야 한다"며 "데이터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려면 기업들은 데이터 기반 작업흐름(워크플로)에서 AI 기반 작업흐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데이터 기반이 아닌 AI 기반 작업을 강조한 이유는 '프로세서'에 있다. 기존에 많은 기업들이 운영상 의사결정을 위해서 '데이터 중심'으로 접근해 왔다. 문제는 '데이터 중심' 접근법에서도 데이터와 데이터로부터 도출된 통찰을 실행에 옮기는 프로세서가 인간이라는 데 있다.
◆① '데이터 주도 의사결정'
50여 년 전에는 오직 인간의 판단이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핵심 프로세서였다.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다년간의 경험으로 다져진 직관에 의존해 재고량 조정, 광고 승인 등의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인간의 직관과 두뇌는 수많은 인지 편향을 갖고 있어 이상적인 의사결정 도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인류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로 높은 정보 처리 비용을 회피하고, 지름길을 찾고, 잠재적인 위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신속하고 무의식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왔다. 이는 단순한 경험적 방법에 의존하는 추론 시스템인 '생존 휴리스틱'으로서 합리성과 객관성에서 벗어나는 길로 자주 인간을 인도한다.
① 인간의 판단을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모델 / 출처=에릭 콜슨·HB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인간의 직관에만 의존하는 게 비효율적이고 변덕스럽기에 데이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비즈니스 거래, 고객 반응, 미시·거시 경제지표 등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에서 데이터 주도 의사결정 시스템은 대체로 IT 부서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DB)와 분산 파일 시스템 등 인프라를 통해 막대한 데이터를 쌓아 둔다. 이를 사람이 소화 가능한 형태로 바꾸기 위해 스프레드 시트, 대시보드, 분석 소프트웨어(SW) 등을 사용한다.
결국 방대한 크기의 데이터를 고도로 정제된 소규모 데이터로 바꾼 뒤 인간에게 의사결정 도구로 제공되는 게 '데이터 중심' 작업흐름이다. 여기서도 여전히 '중앙 프로세서(CPU)' 역할은 인간이 맡는다.
②빅데이터를 `요약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이터 중심 작업흐름` 모델 / 출처=에릭 콜슨·HB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콜슨 CAO는 '데이터 중심' 작업흐름은 인간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낫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모든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는 점이 문제다.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데이터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요약된 데이터는 대규모 원본 데이터에 포함된 상관관계나 패턴 등을 가릴 수 있다. 구조화된 수백만 또는 수십억 건 데이터가 지역별 평균판매가 같은 수치로 환원되며, 유의미한 데이터 요소 간 관계가 총합계로 더해지며 더 이상 비즈니스에 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데이터 요약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를 의사결정 근거로 사용할 가치는 거의 없다.
또 다른 경우는 요약된 데이터에 동일한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부분에 대한 분석결과가 전체 분석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심프슨의 역설(Simpson's Paradox)'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콜슨 CAO는 "AB 테스트 같은 무작위 시험이 없다면 설령 AI일지라도 상충되는 요인을 통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인간 직관의 비효율성을 회피하려 했지만 여전히 정확도에 배치되는 방식을 쓰는 셈이다.
이 밖에도 데이터는 인간을 인지적 편견으로부터 지켜주는 데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각종 인지적 편향에 취향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요약한다. 데이터를 분류할 때도 고정관념을 기준으로 거칠게 나누는 경향도 있다. 지리적 위치에 따른 눈에 띄는 데이터 간 차이점이 없는 경우에도 지리적 위치를 기준으로 처리할 수 있다.
가격과 판매량, 시장 침투율과 전환율, 신용 위험과 수입 등 모두 데이터 관계가 다를 때도 단순한 선형이라고 가정하곤 한다. 인간이 처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② '인공지능 중심 의사결정'
콜슨 CAO는 AI를 데이터 주요 프로세서로 작업흐름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 AI 중심 의사결정 모델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AI에게 전적으로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모델'로 구조화된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적합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편향된 데이터를 사용하면 안 되기에,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말고도 데이터가 생성되는 방식부터 이해해야 한다.
③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의사결정을 위임한 작업흐름 모델 / 출처=에릭 콜슨·HB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적으로 AI에 위임한 작업흐름에서 인간은 제외되지만, 콜슨 CAO는 이 같은 비용절감 및 단순한 자동화는 'AI 기반 의사결정'의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구조화된 데이터 처리 작업에서 인간을 제거한다는 게 더 이상 인간이 어떤 작업에서도 소용없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인간과 AI가 상호 보완하는 의사결정 모델'이다. 비전, 전략, 기업 가치, 시장 구조는 모두 인간의 사고를 통해서만 발현 가능하며 기업 문화나 각종 아날로그·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보는 AI가 접근할 수 없지만 비즈니스 의사결정과는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④ 인간과 인공지능이 상호 보완하는 의사결정 모델 / 출처=에릭 콜슨·HBR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일례로 AI는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재고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사는 이윤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재고량을 더 크게 유지할 수 있다. AI는 마케팅에 돈을 더 투자하면 가장 투자수익률(ROI)이 높을 것이라 예측해도, 제품 품질에 더 투자해야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콜슨 CAO는 "전략, 가치, 시장 환경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추가 정보는 AI의 객관적 합리성을 초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AI를 활용해 인간이 접근 가능한 추가 정보가 제공되면 최선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데이터와 직접 연결되는 대신, AI가 데이터를 처리할 때 생기는 가능성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인간과 AI를 모두 활용하는 게 어느 하나만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인간의 의사결정에 AI를 도입하면 구조화된 데이터를 보다 잘 처리할 뿐 아니라 인간과 AI가 상호 보완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기업 간 경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콜슨 CAO는 인간과 AI를 포용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기본적으로 구축한 회사가 '새롭게 진화한 차세대 회사'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안갑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