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은 원래 승자 독식"
특정 플랫폼의 과도한 시장 독과점은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선순환 구조를 어렵게 한다.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 원천봉쇄되며 궁극적으로 산업의 비전도 퇴색된다. 심지어 특정 플랫폼이 패권을 차지한 후 나쁜 마음을 먹고 세상을 어지럽힌다면, 그것이 바로 재앙이고 지옥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부의 글로벌 ICT 기업에 대한 압박은 결국 이러한 불안감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플랫폼 사업의 본질이 시작부터 시장 독과점에 있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그럭저럭 사업을 하기위해 플랫폼 사업을 하는 경우는 없으며, 시작부터 시장을 통째로 삼키기 위해 움직인다.
만약 어렵다면 타깃 시장의 범위를 축소시켜 소위 틈새시장을 설정해서라도 승자독식을 노린다. 플랫폼 사업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을 담아내어 내 마음대로 뿌리는 작업과 비슷하며, 목표로 삼은 강물은 반드시 내가 다 잡아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틈이 생긴다면 짧은 시간이야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나 마지막에는 반드시 파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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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
시장 독과점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고 가정해보자.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시장을 독점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크게 세 가지 비결이 있다. 시장 초기 눈부신 아이디어로 무장하거나, 후발주자라면 카피를 불사하면서도 엄청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거나, 혹은 돈이 있거나.
첫 번째 방안을 택한 이들은 시대의 흐름을 확실하게 간파하고, 적절한 운까지 곁들어진 영웅들이다. 구글과 애플, 넷플릭스 등 기존 ICT 강자들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시장 극초반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초기 사업자들이 구시대와 신시대의 중간에서 혼란스러워할 무렵 강렬한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승기를 잡았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두 번째 방안을 택한 이들은 첫 번째 방안을 택한 이들도 일부 포함되며, 말 그대로 획기적인 전략으로 승부를 뒤집은 초인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좋게보면 초인이고 나쁘게 보면 카피캣이다. 물론 카피캣이라고 해도 시장 극초반의 사업자들이 앞 만 바라볼 때 상하좌우를 돌아보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기 때문에, 역시 초인으로 불러야 한다. 샤오미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세 번째 방안을 살펴보기 전 우리의 시간을 돌아볼 순간이다. 모바일 혁명이 시작된 지 10년이 넘게 흘렀고, 이제는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난립하는 초연결 시대가 오고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속한 이들이 이미 승승장구하며 세상의 주인이 된 상태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은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할까? 소위 개인기로 판을 뒤집기는 나올만한 기술은 대부분 나왔고, 무엇보다 콘텐츠와 콘텐츠를 연결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너무 일상화됐다. 여기서 단순한 방법이 나온다. 바로 쩐의 전쟁이다.
플랫폼 성공 비결 세 번째 쩐의 전쟁 주인공은 대부분 기존 사업자들이다. 이미 오래된 산업 영역에서 몸집을 불리거나 존재했던 이들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업자들의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 칼을 빼들며 무대로 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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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뛰어오른 이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 OTT 플랫폼이다.
SK텔레콤과 지상파 방송3사는 18일 푹과 옥수수의 만남으로 웨이브를 출범시켰다. SK텔레콤은 올해 상반기 합병법인 웨이브에 900억원 수준의 투자를 결정했으며 이를 통해 30%의 웨이브 지분을 확보했다. 해외 전략적투자자들을 모으는 한편 자사의 합병법인 웨이브 지분을 50%로 올려 경영권을 가져온다는 방침도 세웠다. 최초 행보는 옥수수가 푹에 합류하는 그림이지만, 조금씩 주도권을 가진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웨이브의 유료 가입자가 400만명을 넘으면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하는 것도 꿈은 아니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웨이브의 출범 주체는 탈통신을 준비하는 오래된 통신사 SK텔레콤, 그리고 대한민국 방송의 역사인 지상파 방송3사다.
특히 지상파 3사는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디즈니 플러스, 애플TV 플러스 등 다양한 OTT가 쏟아지는 가운데 위기감을 느낀 기존 레거시 미디어 플랫폼을 상징한다. 직접수신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지는 등 플랫폼 경쟁력을 이미 유료방송에 빼앗긴 상태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유료방송의 맹주인 IPTV를 운영하는 통신사의 탈통신 전략과 힘을 합쳐 콘텐츠 경쟁력이라도 키워 궁극적으로 모바일에서는 플랫폼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그 핵심 무기는 돈. 즉 막대한 투자다. 쩐의 전쟁이라면 할 만한 게임이라는 셈법이다. 웨이브는 오리지널 콘텐츠에만 3000억원을 투자한다. 이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로 로컬 비즈니스를 교묘하게 끌어가는 넷플릭스의 전략을 답습하는 구조지만, 이 역시 핵심은 쩐의 전쟁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CJ ENM과 JTBC의 합작 OTT도 마찬가지다. CJ ENM의 OTT ‘티빙’을 개편하는 방식이며 역시 콘텐츠 파워를 키워 모바일 미디어 플랫폼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쩐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웨이브의 중심에 공포에 떠는 지상파가 있다면, CJ ENM과 JTBC의 합작 OTT에는 지상파를 공포에 떨게했던 유료방송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의 공포가 있다는 점이 새롭다.
공포에 떠는 사업자의 새로운 시도가 벌어지며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확인된다. 그 공포의 근원은 쿠팡이며, 서두르는 곳은 기존 오프라인 유통 강자들이다.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인수합병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커머스의 확장으로 큰 타격을 입은 롯데가 SK텔레콤 11번가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롯데는 2017년 11번가 인수 직전까지 갔으나 SK텔레콤과의 경영권 행사 여부를 두고 충돌해 결국 포기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롯데의 11번가 인수 이야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심지어 롯데는 티몬 등 소셜커머스 인수에도 관심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자체적인 로드맵으로 쩐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등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8개의 온라인몰을 통합해 ‘e커머스(commerce) 사업본부’를 신설한 상황에서 향후 5년간 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신세계는 이커머스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3월 1일부터 온라인 통합법인 에스에스지닷컴(SSG.COM)을 출범하고 온라인 부문 총매출을 지난해보다 30% 가량 증가한 3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투자가 단행되고 있으며 추가적인 인수합병 전략도 타진되고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롯데와 신세계가 쩐의 전쟁을 시작하자 남은 사업자들도 반응하고 있다. 쿠팡이 11번가나 이베이코리아를 흡수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넥슨과 위메프는 아예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넥슨코리아가 위메프 모기업인 원더홀딩스에 3500억원을 투자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도 역시 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모빌리티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쩐의 전쟁을 일으키는 사업자가 전통의 기업은 아니지만, 국내 ICT 시장 1세대 중 하나인 카카오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OTT 및 이커머스 시장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공포를 가진 카카오는 이제 택시업계와의 대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카카오 모빌리티를 통해 100여개 법인택시와 연합, 라이언 택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웨이고까지 삼켰다. 초반 판을 흔들었던 쏘카 VCNC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자본력이다.
T맵의 SK텔레콤도 큰 틀에서는 모빌리티 영역에 쩐의 전쟁을 시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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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된다
현재 국내 OTT, 이커머스, 모빌리티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두 공포에 질린 기존 사업자의 공포가 쩐의 전쟁으로 비화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정상적인 행태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시장 독과점을 지향하며 이는 생존의 문제기 때문이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있어 승자 독식의 비정한 드라마는 다른 사업자들도 자주 보여준다. 당장 우버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비전펀드의 지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모빌리티 사업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마존 제국, 아마존 현상은 이제 보통명사가 되고 있으며 OTT 시장에서는 넷플릭소노믹스(Netflixonomics)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쩐의 전쟁으로 경쟁자의 위협 자체를 봉쇄한다는 뜻으로,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6월 처음 사용했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 그 것 자체가 새로운 승자독식의 드라마일 뿐이다. 넷플릭스의 현재 누적 채무는 85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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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금의 플랫폼 전쟁은 승자독식을 위한 쩐의 전쟁으로 비화되며, 이는 시대의 명령처럼 작동하고 있다. 관점을 달리보면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붕괴하고 있는 망 중립성도 마찬가지다. 통신사들이 마음껏 제로레이팅과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할 수 있는 망 이용료와 관련된 논란도 동일하다. 이제 특정 플랫폼의 독식은 더 자연스러워지며, 쩐의 전쟁은 필수불가결한 원칙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만히 지켜두고 봐야만 할까.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해 시장의 다양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러한 의견의 극단적인 사례가 미 하원의 글로벌 ICT 기업 압박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도 간단하지는 않은 것이, 최근 거대 플랫폼의 시장 독과점을 우려해 이를 다양성의 생태계로 바꾸려는 목적보다는 국가의 세금 및 시장 지키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큰 틀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어낸다는 점을 보면 고무적인 시도지만, 지나치게 강제적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이 그렇다. 지킬 것은 지키되, 목적에 대한 수단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고민할 순간이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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