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은행들은 "독일 국채 금리가 일정 수준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이익"이라며 노인·주부 가리지 않고 투자를 권유했고, 불행하게도 글로벌 경기가 하강하면서 독일 국채 금리가 뚝뚝 떨어져 급기야 원금마저 까먹게 된 것이다. 은행들의 아마추어식 투자 권유도 문제지만, 틈만 나면 투자자 보호를 외치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부실한 관리감독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1년 전 키코는 들추고 눈앞의 DLS는 방치한 금감원
시중은행들은 독일 국채 금리가 본격 하락한 올 5월에도 문제의 DLS를 팔고 있었지만, 정작 금감원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금감원은 윤석헌 원장이 작년 5월 취임 후 난데없이 지시한 키코(KIKO) 사태 재조사 처리에 골몰하고 있었다. 키코는 환율이 변해 기업들이 수출로 번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금융 파생 상품으로, 은행들이 2008년 금융 위기 때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팔아서 기업들이 큰 손실을 봤다. 이에 2013년 대법원이 판결했고, 은행들은 기업들에 배상을 해주고 마무리했다. 윤 원장은 그렇게 끝난 사건을 은행 처벌과 피해자 보상이 부족하다며 다시 끄집어내 재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배상을 마친 은행들은 추가로 배상할 경우 배임 문제가 불거져 소송을 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 보상도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금감원이 소위 '은행권 적폐 청산'에 매달린 나머지 키코와 비슷한 구조의 파생 상품인 DLS 문제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키코와 DLS는 투자자가 기업과 개인이라는 것만 다를 뿐 나머지는 거의 동일한 구조의 파생 상품이다.
사실 금감원은 DLS 사태를 예방할 기회가 있었다. 작년 10월, 금감원은 30여개 금융사를 대상으로 파생 금융상품에 대한 암행 감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대해 고령 투자자 보호 방안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각각 최저 수준인 '저조', '미흡' 등급을 줬다. 그러나 금감원은 별다른 추가 대책을 내놓지 않았고, 결국 원금 100% 손실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1년여가 흐른 뒤 DLS 원금 손실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 19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이런 위험한 펀드는 최근 현상이라서 이슈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금융회사를 관리감독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자가 할 말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감원이 과거 키코 사건에 매달리느라 DLS가 물밑에서 터지는 걸 전혀 감지 못 하고, 어떤 선제적 조치도 취하지 못한 건 명백한 감독 실패다"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작년부터 문제 지적"
이번 DLS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은 "전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사모(私募)펀드 형식으로 모집됐기 때문에 감독 당국이 DLS를 사전 승인하는 단계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매월 장외파생거래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한다. 그 보고엔 DLS의 경우 원금 보장 수준이 '0'으로 표시되고 독일 국채 등 기초 자산과 원금 손실 기준(배리어), 거래 실적 등이 포함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금 보장이 전혀 되지 않고 독일 금리 등 기초 자산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일부 은행이 그 상품을 과열 판매하고 있다면 당연히 금감원으로선 감시·감독을 강화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다른 증권사들과 은행은 DLS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나 일부 은행에선 법을 어기고 판매사인 은행이 자산운용사에 상품 구조를 지시하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투자자들과 시민단체는 작년부터 해당 은행과 금감원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했지만, 금감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은행과 금감원에 수차례 DLS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오히려 은행은 민원을 취하시키는 데 급급하고 금감원은 관심을 두지 않는 패턴이 반복됐다"며 "금감원이 문제의 실질을 보지 못하고 형식적으로만 감독하다 보니 은행들이 무분별한 영업을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형석 기자(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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