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들 숨진 날, 비행기 예약·전화번호 삭제 등
검찰 "남편이 의붓아들만 챙겨 적개심...살해 동기"
오는 20일 전 남편 살해 사건과 함께 결심공판 예정
전 남편과 의붓아들 A(사망 당시 5세)군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 중인 고유정(37)이 의붓아들 사망 일주일 전 부부 싸움을 하다 "내가 의붓아들을 죽여버릴까"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1일 오전 10시 32분쯤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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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정봉기)는 6일 살인 및 사체훼손·은닉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에 대한 10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의붓아들의 자연사 가능성’과 ‘아버지에 의한 사망 가능성’, ‘고유정의 계획적 살인’ 등 세 가지 가능성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유정의 계획적 살인의 증거로 녹음 내역을 공개했다.
고유정이 A군이 사망하기 일주일 전인 2019년 2월 22일 오후 1시 52분쯤 현 남편 홍모(38)씨와 싸우다가 "음음…. 내가 쟤(의붓아들)를 죽여버릴까!"라고 말한 녹음 내역을 공개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해당 발언을 하기 1시간 전에 인터넷을 통해 4년 전 발생한 살인 사건 기사를 검색했다"며 의붓아들 살인 사건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2015년 50대 남성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숨지게 한 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부검을 통해 밝혀진 모친의 사인은 비구폐쇄성 질식사다. 해부학적으로 '살인'을 확정할 수 없는 사건으로, 범인의 자백으로 밝혀졌다"며 "당시 부검서에는 배개로 노인과 어린이의 얼굴을 눌러 질식시켰을 때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외에도 홍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너의 모든 것을 다 무너뜨려 줄 테다', '웃음기 없이 모두 사라지게 해주마', '난 너한테 더한 고통을 주고 떠날 것이다' 등 범행 동기를 암시하는 문자 또는 소셜미디어(SNS)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고유정의 살해 동기가 의붓 아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유산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재혼한 남편이 의붓아들만 아끼는 태도를 보이자 범행에 나섰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 남편이 유산한 아이를 진정으로 아끼지 않고 전처와 낳은 의붓아들만을 아끼는 태도를 보이자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센터장과 수면학회 회장,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 등의 진술과 의견을 토대로 피해자가 아버지에 의해 숨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법의학계의 권위자인 이정빈 석좌교수는 검찰 측에 "A군은 사망 당시 키와 체중이 적었지만, 코와 입이 막히면 숨을 쉬기 위해 필사의 노력으로 빠져나왔을 것"이라며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막지 않는 한 피해자는 고개를 돌려 숨을 쉴 수 있다"고 진술했다.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이 지난 9월 30일 4차 공판을 받기 위해 제주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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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은 A군이 숨졌을 당시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을 뿐 아니라 밤을 새우면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고유정의 컴퓨터 접속과 휴대전화 사용 기록을 조사한 결과 고유정은 B군이 숨진 지난해 3월 2일 오전 2시 36분쯤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검색 기록 중에는 완도~제주행 여객선 후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2개월 뒤 전 남편 살해 후 시신을 처리한 여객선과 같은 노선이다.
오전 3시 48분에는 현 남편 홍씨의 사별한 전처 가족과 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삭제했다. 홍씨는 고유정에게 전처 가족과 지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유정과 홍씨는 그 이전부터 사별한 전처 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고유정은 오전 4시 52분 휴대전화에 녹음된 음성파일 2개를 듣는다. 하나는 같은 해 2월 남편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청주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통화 내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유산했을 당시 다녔던 산부인과에 전화했던 파일이다. 검찰이 의붓아들 살해 동기 중 하나로 고유정이 두 차례 유산 후 남편과의 갈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오전 7시 9분에는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제주도행 비행기를 예약한 기록도 확인됐다.
검찰은 고유정이 현 남편의 잠버릇을 언급한 시기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했다. 고유정의 갑작스러운 잠버릇 언급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려는 수단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사건을 처음 수사한 청주경찰은 애초에 현 남편을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었지만, 국과수에서 수면유도제 성분 검출 감정 결과를 통보받고 수사 방향을 급선회했다. 고유정 측은 "우연적 요소를 꿰맞춘 상상력의 결정체"라며 검찰의 공소장을 전면 부인했다.
재판부는 전 남편 살인사건 유족들이 빠른 판결을 원하는 만큼 오는 20일 두 사건에 대한 결심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오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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