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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89년전 실린 '我와 非我의 투쟁'… 민족의식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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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조선일보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유명한 역사관을 제시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조선상고사'는 일제강점기 우리 고대사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의식을 일깨운 저술이다. 한국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의 출발로 평가받는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는 89년 전 조선일보에 장기 연재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조선상고사'는 신채호가 옥중에 있을 때인 1931년 6월 10일부터 103회, '조선상고문화사'는 10월 15일부터 41회 연재됐다. 조선일보는 신채호의 옥중 소식을 가장 자세히 알린 신문이기도 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신채호를 두 차례 인터뷰하고 기사로 실었다. 일제에 체포된 직후인 1928년 11월 8일 자에 '대련 감옥에서 신단재와 면회', 1931년 12월 19일부터 7회에 걸쳐 '조선의 역사 대가 단재 옥중 회견기'를 실었다.

신채호는 1936년 2월 21일 일제의 여순(旅順·뤼순) 감옥에서 8년 복역 끝에 옥사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바로 그곳이다.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민세 안재홍은 장례 직후인 2월 27일 자에서 "살아서 산하(山河)를 등졌고 죽어서 고국에 돌아오니 인세(人世·인간 세상)의 비극이다"라며 "조선사·조선상고문화사는 그의 일대 저술이라. 조선일보 지상(紙上)에 수백 회를 연재한 바이니 학계 진중(珍重·진귀하고 소중)의 문헌이 되었다"고 애도했다.

지난 21일은 신채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84주기 되는 날이었다. 선생을 추념하며 청주 상당구 단재 묘소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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