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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박찬수 칼럼] 4·15 총선은 왜 ‘야당 심판’ 선거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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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문재인 일당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체감과 너무 다른 그런 구호로는, 2014년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머물러 있는 미래통합당과 2020년을 헤쳐 가는 문재인 정부의 대결만 부각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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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서울 종로 황교안 국회의원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민센터 앞 거리유세에서 지지자와 인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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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사망자는 1800명을 넘었다. 미국과 전세계가 경악했다. 카리브해나 남아시아 국가에서 태풍으로 수백~수천명이 숨진 적은 있지만,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자연재해로 2천명 가까이 숨지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수면보다 낮은 도시 뉴올리언스를 지탱하는 둑이 초대형 허리케인을 견디지 못하리란 건 이미 예고됐다. 시당국은 도심 주민들에게 외곽으로 대피하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빈민가 흑인들에겐 차가 없었다. 걸어서라도 시내 슈퍼돔 구장으로 피신한 이들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어처구니없는 참극이었다. 정부가 학교 버스 수십대만 동원해 주민들을 태워 날랐어도 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

15년이 흐른 2020년, 한국과 미국의 코로나 대응 성패를 가른 키워드를 카트리나 참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우리가 세계에 보여준 건 탁월한 ‘사회적 동원 능력’이었다. 정부 요청에 곧바로 진단키트 개발과 마스크 증산에 들어간 업체들의 노력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행동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민간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전환해 가벼운 환자들을 수용함으로써 의료체계 붕괴를 막은 건 시의적절했다. 대구·경북에서 신천지 감염자가 폭발할 때 1천명이 넘는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을 조기 소집해 투입할 수 있었던 건 의료요원들의 헌신성을 빼놓고 얘기하기 힘들다. 현대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사회적 동원’은 매우 중요하다고 세계보건기구는 누누이 강조한다. 그 점에서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물론 사회적 동원이 지나치면 ‘관치’로 흐른다. ‘관치’에선 정부의 무리한 지시라도 민간은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 멀리 갈 거 없이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재단 설립과 강제 모금 등이 상징적 예다. 그런 뼈아픈 경험을 거치며, 자발성과 책임에 기반한 사회적 동원에서 우리 사회는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정보 활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으로 감염자 동선을 파악해서 공유한 게 코로나 확산 저지에 한몫을 한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개인정보를 중시하는 미국과 유럽에선 도저히 채택할 수 없는 방식이란 반응이 현지에선 많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국내의 휴대전화 추적이나 손목밴드 논란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논쟁과 합의의 영역일 것이다. 지난해 초 야당과 보수 언론은 미국 프리덤하우스 통계 등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가 헝가리 오르반 정부보다도 덜 민주적’이라며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했다. 그 헝가리가 지금은 모든 법에 우선하는 ‘코로나 특별법’을 만들어 오르반 정부에 국회마저 무력화할 수 있는 비상대권의 칼을 쥐여주었다. 외출을 제한하고 레스토랑 문을 닫고 국경을 아예 봉쇄하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의 개인정보 침해 논란은 얼마나 위중한 것일까.

눈여겨볼 건, 정부가 그렇게 휴대전화 정보를 가져가는데도 이것이 또 다른 감시와 사찰로 이어질 거란 두려움은 의외로 크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 대응이 워낙 시급하기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보·수사기관의 사찰이 숱하게 문제 됐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이었어도 과연 그랬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보수 정권 9년의 경험 그리고 탄핵과 촛불을 거치면서 적어도 현 정부가 민주주의와 개인 자유의 보호란 측면에선 좀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15 총선이 ‘정권 심판’이 아니라 ‘야당 심판’으로 흐르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문재인 일당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면 선거는 사라지고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설 거란 얘기까지 한다. 국민이 느끼는 정서와는 너무 다르다. 이래선 총선이 ‘과거와 현재의 대결’로 흐를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가 났던 2014년의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머물러 있는 미래통합당과 2020년을 헤쳐 가는 문재인 정부의 대결인 것이다.

‘정부의 대응 실패 책임을 왜 종교단체에 돌리느냐’는 황교안 대표의 말에선, 세월호 참사 당시 어떤 책임감도 보여주지 못한 옛 집권세력의 퇴행만 부각될 뿐이다. 지금 야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능력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먼저 답하는 게 중요하다.

선임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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