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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한미연합과 주한미군

'타결 임박'vs.'트럼프 거절'… 극과극 보도, 열흘새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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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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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코로나 방역 공조’에 힘 입어 ‘잠정 타결’됐다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왜 표류하고 있을까. 국내 언론이 잠정 타결설을 보도한 다음날,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김칫국 마시다’란 트윗을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로이터통신이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을 작년 대비 13% 이상 올려주겠다는 한국 측 제안을 이미 거절했다고 보도하면서 양국간 방위비 협상을 둘러싼 막바지 기류가 온탕과 냉탕을 오간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측 제안 거절 소식을 전하면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 측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 줄 것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도 전달했음을 시사했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에서 잠정 타결 보도가 나온 지 닷새 만인 지난 6일 밤 8시 30분쯤 정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20여분 간 통화했다. 로이터 통신이 이날 보도에서 인용한 전·현직 미국 당국자들은 앞으로 수 주, 혹은 수 개월 동안 방위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금액과 한국 측의 제안 사이에 그만큼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전개는 지난 1일 몇몇 국내 신문·방송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던 낙관적 전망과는 다른 방향이다. 지난 1일 새벽 일부 국내 언론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실무선에서 ‘잠정 타결’됐으며 이르면 이날 중 최종 타결이 발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그간 요구했던 40억~50억 달러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서 타결이 됐으며, 유효기간은 5년으로 하기로 했다는 자세한 수치까지 곁들여진 보도였다. 이런 소식을 전한 매체들은 이에 따라 1일부터 시작된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도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초 50억 달러(한화 6조원대)의 방위비를 요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타결로 선회한 데는 양국간 ‘코로나 공조’가 있었다는 해석도 뒤따랐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코로나 방역 협력을 위해 통화하고, 한국이 미국에 진단키트를 제공하기로 한 뒤에 방위비 협상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분석이었다. 코로나 방역에 한국의 협조가 필요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여권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이 어려운 걸(방위비 타결)을 해냈다”며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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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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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일 일제히 보도된 ‘잠정 타결’ 전망은 그 전날 한국 정부 협상대표인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대사가 밝힌 입장과도 차이가 있었다. 정 대사는 지난달 31일 정부 e-브리핑 홈페이지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현재 한미 양국은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방위비분담협상이 상호 호혜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최종 타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견을 많이 좁히긴 했지만, 최종 타결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KBS 등의 보도와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런 가운데 잠정 타결 보도가 나온 배경에는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있었다고 한다. 한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지난달 31일 저녁 일부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미 양측 실무진 간 협의는 끝났고, 최종 결정 단계만 남은 상황”이라며 “이르면 내일(4월1일) 최종 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다음날 ‘잠정 타결’, ‘이르면 오늘 타결’ 보도를 내놓은 매체들은 주로 이 청와대 고위 당국자와 접촉한 언론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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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3월 31일 몇몇 기자들에게 "이르면 4월 1일 최종 타결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KBS 보도 내용. /KBS 뉴스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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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잠정 타결설 보도 이후 미국이 보인 반응은 우리 측 기대와 상당히 달랐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해당 보도의 진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민국과의 협상은 진행 중”이라며 “우리는 호혜적이고 공평한 협정을 한국 측과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동맹국들이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기대를 분명히 해왔다”고도 했다. 아직 협상은 끝나지 않았고, 한국 측이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뉘앙스였다.

나아가 클라크 쿠퍼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 시각) 언론에 “(방위비) 협상이 계속돼 왔고,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같은 날 트위터에 영어로 “오늘 배웠다: ‘부화하기 전에 병아리 숫자를 세지 마라’=’때가 되지 않았는데 김칫국 마시지 마라’”는 글을 올렸다. 한국어로 ‘김칫국 마시다’라고 적힌 게시물도 첨부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칫국을 마시지 말라고 한국 측에 경고한 것이란 해석과 함께, 외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주한미군 측은 에이브럼스 사령관이 평소 김치를 즐겨 먹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기 때문에 쓴 글이라며 “어떤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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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방위비 분담금 잠정 타결 보도가 난 다음날인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김칫국 마시다' 게시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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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 속에 2일 오후, 외교부는 “고위급에서도 협의를 계속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후 8일이 지나도록 ‘최종 타결’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마침내 로이터 통신이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외교 소식통이 전한 그간의 경과와 미국 측 보도 등을 종합해서 보면, 지난달 31일 밤 시점에서 협상단 간의 ‘잠정 합의안’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 측은 10~20%의 소폭 인상을 제안했다. 미국 측은 4월 1일부로 시작될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에 앞서, 일단 이런 한국 측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 NBC 방송은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문제를 백악관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양측이 무급휴직을 미루기 위한 잠정합의를 논의했으며, 그 방안을 에스퍼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음을 짐작케 하는 보도다. 이 무렵 한국 일부 매체들이 잠정 타결 보도를 내놓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맞물린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은 이날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에스퍼 장관, 폼페이오 장관과 상의한 후 한국 측 제안을 거절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기대(요구 총액)를 상당히 낮췄음에도 서울의 제안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에스퍼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도 한국 측이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미국의 군사·정보 자산 비용은 물론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직접 필요한 비용의 3분의 1도 내지 않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측이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틀을 바꿔서 한반도 역외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한국이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작년 9월 시작된 이번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미국 측은 본토에 있는 미군 여단이 한국 순환배치를 위해 이동할 때 드는 비용도 분담해 줄 것을 요구했다. 미국 측은 ‘한반도 방위에 쓰는 정찰위성과 전략자산 운용 비용만 해도 막대한데 그것까지 요구하지는 않겠다.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다른 비용만이라도 분담하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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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서울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제5차 회의 장면. 양측은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7차 회의를 했지만 최종 타결에 실패했다.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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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 측은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구성된 기존 SMA의 틀은 변경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한반도 역외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분담할 수 없다고 버텨왔다. 한국 측이 제시한 총액도 트럼프 대통령이 보기에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한국 측이 작년보다 13% 방위비를 올려주면 한화로는 작년의 1조389억원에서 1조1740억원 수준으로 총액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오른 점을 고려하면 미화로는 9억2400만 달러에서 9억7000만 달러가 된 셈이라, 50억 달러를 원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인식하는 인상폭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잠정 타결’ 보도 전날 일부 언론과 접촉한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한·미 간의 인식 차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까. 해당 고위 당국자는 ‘협상이 최종 단계에 와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 보도된 것 같은 내용을 말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이 잘못 알고 보도했다는 취지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재가하지 않은 협상 내용이 한국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서, 그 부담이 한국 협상팀에게 돌아오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무선에서 잠정 합의된 안이 있어도 양측 정상이 승인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 한국 측이 ‘잠정 타결’을 밀어붙인 모양새가 됐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 거절한 제안 이상의 금액을 한국이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방위비 분담 협상이 더욱 지연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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