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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초중고 개학·등교 이모저모

    [NOW] 부모 참견 수업된 온라인 개학, 툭하면 교사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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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에 간섭하거나 숙제까지 대신

    "아이 주눅드니 과제 공개 말라"

    교사들 "매일 감시당하는 느낌"

    #1. 온라인 개학 중인 인천 남동구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교사 양모(30)씨는 며칠 전 학생들에게 자기소개 글을 다섯 문장으로 적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냈다. 학급 소식 알림용 앱인 '클래스팅'에 소개 글을 올리라고 공지했다. 과제 제출 날인 16일, 한 학생이 한 문장 적은 네 문장으로 숙제를 올렸다. 양씨는 그 학생이 올린 글 뒤에 '한 문장 더 써주세요^^' 하고 댓글을 달았다. 몇 시간 뒤 양 교사에게 앱으로 쪽지 하나가 날아왔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보낸 '공개적으로 나무라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었다. 양 교사는 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장시간 통화했으나, 끝내 "조심하겠습니다"라고 사과하고 끝냈다. 양 교사는 "온라인 개학을 한 뒤로는 매 수업을 학부모들에게 감시당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 지난 17일 40대 워킹맘 A씨는 학교 숙제 때문에 초등학생 아들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라는 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쓴 뒤 사진을 찍어 온라인 학습 공간 'e학습터'에 올리는 숙제였는데, 다른 학생들의 숙제보다 아들 것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학생의 감상문은 초등학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내용도 좋았다. A씨는 "우리 아이는 지렁이 글씨에 '재미있었다'는 내용밖에 없었다"며 "너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니까 속상한 마음에 아이를 꾸짖었다"고 했다. A씨는 21일엔 월차 휴가를 내고 그날 오후까지 제출해야 하는 미술 숙제를 아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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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개학과 함께 모든 수업이 학부모 참관 수업처럼 변했다는 고충이 학부모와 교사 모두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제외한 모든 학교가 온라인으로 개학했다. 대부분은 정부가 만든 웹사이트 'e학습터'나 민간 앱 '클래스팅' 등 온라인 공간에 숙제를 올리고 학습 일정을 공유한다. 이 앱에서는 학생과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들도 학습 진행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교사들은 "부모들이 과도하게 자녀들의 학습에 관여한다"고 불만을 털어놓고, 부모들은 "학생이 제출한 과제를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가 못 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학부모 권모(43)씨는 20일 오전 반차를 낼 예정이다. 초등학생 딸의 김밥 만들기 숙제를 도와주려는 것이다. 지난 16·17일 'e학습터'에 올라온 학생들의 과제를 보니 대부분 부모가 도와준 것으로 보였다. 권씨는 "제출한 과제가 다른 아이에게도 공개되니 우리 아이가 주눅 들까 봐 나도 도와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교사는 "다른 학생들의 과제를 보는 것도 학습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공개하고 있으나,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그것을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과 과제 공개의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중학교 국어 교사 이모(33·경기 김포)씨는 온라인으로 받는 학생들의 과제물이 마뜩잖다. 유튜브를 통해 강의 영상을 올리고, '코로나 사태에 효율적인 거리 두기 방법'에 대해 글을 쓰라는 숙제를 내줬더니 제출된 과제물 중 '심려' '교우 관계' 등 중학교 1학년이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을 담은 글이 상당수였다. 예컨대 한 학생은 "선생님께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외출은 자제하고, 교우 관계는 카카오톡 등 SNS로 쌓겠다"고 적었다. 이씨는 "숙제에 학부모의 손길이 가득했다"며 "강의 영상도 같이 볼 거라는 생각에 신경 쓰인다"고 했다.

    20일부터는 초등학교 1~3학년도 온라인으로 개학한다. 교사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특성상 학부모의 참여와 관여가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사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개학 전 학생 휴대전화로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데 옆에서 아이에게 모범 답변을 가르쳐주는 학부모가 있다"며 "다음 주가 어떻게 될지 벌써 걱정된다"고 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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