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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흑인 사망’ 항의시위 르포…백악관 앞 분노 “나도 숨 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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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미국을 바꾸자”

항의 시위 30여 도시 번져

AP “국방부, 군사경찰 투입 준비”


한겨레

30일(현지시각) 미국 시민들이 백악관 앞길에 모여, 지난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한 시민이 플로이드가 경찰에 진압될 때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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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와 오빠는 죽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거리를 걸어다니지 못한다.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안 바꾼다!”

토요일인 30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 모인 수백명의 시민들 속에서 한 40대 비백인 여성이 소리치자 참석자들이 박수로 호응했다. 특별한 진행자 없이 누군가 여기저기서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외치면 다 함께 따라 외쳤다. 닷새 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46)가 백인 경찰 데릭 쇼빈(44)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숨진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 속에서 “정의 없이 평화도 없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같은 외침이 계속됐다.

<한겨레>가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어 뛰쳐나왔다”며 분노와 절망감을 토로했다. 흑인 남성 코미 악팔로(29)는 “흑인들은 매일 고통을 겪고 있다. 플로이드 사망은 흑인들이 미국에서 여전히 2류 시민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백인 여성인 캐런 브라러브(75)는 “2020년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슬프고 화난다”며 “인종주의는 사람의 마음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다양한 인종, 성별, 연령에 걸친 참석자들은 마스크를 낀 채 정의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이날 워싱턴 곳곳에서 백악관 근처로 접근하는 시위대와 밀어내는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대통령 비밀경호국 차량을 부수고 지붕에 올라갔다.

지난 25일 발생한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당황한 당국은 가해 경찰관 데릭 쇼빈을 3급 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 시위대가 약탈과 방화 등 극단적 폭력으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빌미 삼아 강경대응 방침만을 강조하며 사태를 악순환으로 몰아넣고 있다. 코로나19로 10만명 이상이 숨지고 실업자 수가 4천만명을 돌파한 상황에서 인종갈등 문제까지 불붙으며 미국이 총체적 혼란에 빠져들었다.

워싱턴은 시위가 번진 수많은 미국 도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플로이드가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닷새 만에 최소 20개 주, 30여개 도시로 번졌다고 <시엔엔>(CNN)은 집계했다.

시위대는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일부는 과격해지며 건물을 부수고 상점을 약탈하거나 방화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경찰차가 불탔으며, 일부 시위대는 상점의 물건들을 집어 갔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28일 경찰서가 불탔다. 미니애폴리스 일대 한인 점포 5곳도 피해를 봤다. 미네소타주 등 12개 주와 워싱턴DC에 주방위군 투입이 승인되고,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등 25개 도시에는 밤시간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현재까지 17개 도시에서 1400여명이 체포됐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트럼프는 이날 스페이스엑스(X)의 첫 민간 유인우주선 발사를 축하하는 연설에서 미 전역에 걸친 시위에 대해 “정의와 평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폭도와 약탈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플로이드의 사망이) 먹칠을 당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무고한 이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안티파와 급진좌파 집단이 폭력과 공공기물 파손을 주도하고 있다”며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민주당 주지사·시장들이 시위대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군대의 무한한 힘을 활용하는 것과 대규모 체포”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미 국방부는 미니애폴리스에 군사경찰(옛 헌병) 부대 800명 투입 준비를 육군에 지시했다고 <에이피>가 보도했다.

이번 사태는 성난 시민을 달래고 인종차별 해법을 끌어낼 지도력이 부재한 미국의 현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11월 대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9일 성명을 내어 “이게 2020년 미국의 ‘정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 가수 마돈나와 비욘세 등 유명인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이러한 비판에 동참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는 정규 6집 발매 기념 온라인 ‘리스닝 파티’를 연기한 채 “유권자 등록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시간을 쓰라”고 독려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시민들에게 ‘평화 시위’도 함께 당부했다. 그는 30일 밤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야만성에 항의하는 것은 옳고 필요하다”면서도 “지역사회를 불지르고 불필요하게 파괴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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