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무기징역 선고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제주지법에 출두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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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편과 의붓아들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왕정옥 부장판사)는 15일 오전 10시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린 고유정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전 남편에 대한 살해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고유정을 연쇄 살인자로 지목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고, 1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부모와 한 집에서 잠을 자다 숨진 의붓아들의 죽음은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재판부 “범행 방식 잔인한 계획적 살해”
이날 재판부는 장장 1시간10분에 걸쳐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검은색 머리빗을 상의 왼쪽 호주머니에 꽂고 등장한 고유정은 앞선 재판에서의 모습처럼 긴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동안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 있으면서 정면만 바라봤다.
고유정은 지난 2019년 5월25일 밤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전 남편을 살해해 시신을 훼손하고 완도행 여객선과 경기도 김포에서 사체를 은닉한 혐의를 받아 왔다.
재판과정에서 고유정은 살인과 사체 은닉 혐의는 인정했다. 다만 펜션에서 수박을 먹기 위해 준비하던 중 전 남편의 강압적 성관계 요구에 대응하다 발생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몸에서 수면제 성분의 졸피뎀이 검출된 점,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한 사정, 범행 후 성폭행 시도로 위장한 정황 등을 이유로 고유정의 계획적 범죄”라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전 남편에 대한 범행은 중대한 생명 침해이자 범행 방식도 잔인하다”며 “피해자 유족의 고통 등을 고려해 원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고유정이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연합뉴스 |
◇”의붓아들 살해 밝힐 압도적 우월적 증거 없다”
의붓아들 살인 혐의에 대한 판단도 1심과 같았다.
검찰은 지난해 3월 2일 오전 4~6시쯤 충북 청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당시 5세)의 등 뒤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 정면에 파묻히게 머리 방향을 돌리고 뒤통수 부위를 10분 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한 혐의로 고유정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망상과 피해의식 속에서 의붓아들을 참혹하게 살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유정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거’를 검찰이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범인을 단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 일부 간접증거와 의심되는 정황이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외부 압력에 눌려 질식사했다는)사망원인 추정은 당시 현장 상황이나 전제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사망 전 피해자가 감기약(항히스타민제)을 복용한 상태였고 체격도 왜소했으며 친아버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평소 잠버릇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잠든 아버지 다리에 눌려 숨지는 ‘포압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사망 추정 시각이 명확지 않은 상황에서 고유정이 사건 당일 새벽 깨어 있었다거나 집안을 돌아다녔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이 제주지법에 출두하고 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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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또 “현 남편(친부)과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 피고인 작성 휴대전화 메모, 피고인과 피해자와의 평소 관계 등에 비춰 살인 동기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범행 방법 역시 “피고인이 남편에게 수면제 성분의 약을 차에 타서 마시게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발각될 위험이 높은 범행방법 선택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간접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부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고의적 범행 여부를 확실하게 할 수 없으면 무죄를 추정하는 것이 헌법상 취지다. 직접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대법원 법리”라고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한 무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의붓아들의 친부에 의한 질식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자, 방청석에 있던 당사자는 울분을 참지 못한 듯 재판 도중 법정을 빠져 나갔다.
[오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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