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살인범을…’ 출간
이진숙 경위는 “사건은 잔혹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며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로 일하면서 느끼는 사명감을 밝혔다. 김창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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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사회교육학 박사 취득 뒤
범죄분석요원 1기로 특채 합격
사건 현장 잔혹하고 힘들었지만
피해자의 억울함 생각하며 견뎌
인천지방경찰청 이진숙 경위(49)는 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이다. 경찰청이 프로파일러를 처음 특채한 2005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선발 당시 그는 서른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였다. 화성 연쇄살인사건부터 고유정 사건,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15년차 베테랑인 이 경위는 최근 저서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행성B)를 출간했다. 저자의 경험담을 비롯해 여러 증거를 통해 용의자를 압축해가는 프로파일러의 직업 세계를 소개하는 한편 최근 범죄 동향, 범죄가 일어나는 원인 등을 진단한 책이다.
시중에 범죄 심리 관련된 책들
현실과 동떨어져 직접 책 출간
새 출발 하고 싶은 전과자들이나
일반인 소통 문제에도 도움 될 것
지난 20일 인천경찰청에서 만난 이 경위는 “시중에 범죄 심리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직접 책을 내게 됐다”며 “직업으로 프로파일러를 염두에 둔 사람은 물론이고 범죄에서 손을 씻고 새 출발을 하려는 전과자나 가족 내에서 소통이 잘 안 돼 답답해하는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집필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인하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심리학과 사회교육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논문이 마무리될 무렵, 경찰청에서 심리학이나 사회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범죄분석요원 1기’를 특채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응시해 합격했다.
“사실 처음엔 어떤 직업인지 잘 몰랐어요. 성폭력상담소 등에서 자원봉사를 꾸준히 했기에 막연히 상담 대상이 일반인에서 범죄자로 바뀌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참혹한 범죄 현장과 시신을 같이 봐야 하는 일인데…. 사건이 발생하면 새벽에도 수시로 나가야 해서 아예 경찰청 근처로 이사까지 했습니다.”
“사건 현장은 참혹하고 일은 힘들었지만 희한하게도 일이 재미있었다”고 이 경위는 말했다. 같이 선발된 동기들은 살인 현장 트라우마로 힘들어 해 업무를 바꾸거나 아예 일을 그만둬, 그만 남았다. 그는 “대학원에서 내담자의 문제와 나를 분리하는 훈련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며 “사건은 잔혹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했다”고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론 2013년 인천 모자 살인사건을 꼽았다. 작은 아들 부부가 재산을 노리고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경위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작은 며느리를 상대로 면담을 지속하고 같이 잠도 자는 등 신뢰를 형성한 후 자백을 통해 피해자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며느리는 그후 자살했다. 이 경위는 “사건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해 해결한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주요 피의자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범죄는 가정에서 기인
부모가 아이 이야기 들어주어야
자녀가 잘못되는 것 막을 수 있어
이 경위는 대부분의 범죄는 가정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만나보면 사이코패스는 소수일 뿐 대부분은 평범하다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들은 어릴 적부터 남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경험이 없어 자존감이 낮고, 별것 아닌 일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의자들을 면담하다 보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형사에겐 말하지 않았던 다른 범죄들까지 술술 털어놓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제가 처음이라며 울곤 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최근 코로나19로 가족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갈등도 증가해 가정 내 범죄가 늘고 있다”며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녀가 잘못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범죄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 정책적으로 인간의 발달과 관련된 교육과정을 마련해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어른이 됐을 때 자신의 아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가르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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