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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설왕설래] 고인 마케팅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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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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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해 흑인 인권 개선에 기여한 공이 크다. 1865년 남북전쟁에서 패전한 남부연합 지도자들을 사면해 국가 통합에 기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정치에서 보복의 악순환을 볼 수 없는 이유다. 링컨의 인권·통합 리더십은 미국 민주주의의 기틀이 됐다.

그런 링컨을 미 대통령들은 끊임없이 소환한다. 고인의 후광을 활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이른바 고인 마케팅 정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2013년 두 번의 취임식 때 링컨의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다. 1861년 링컨의 대통령 취임식 때 등장했던 성경을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링컨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거뒀다. 초선 취임식 때는 링컨처럼 필라델피아와 펜실베이니아를 거쳐 워싱턴DC에 입성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노예를 해방한 대통령과 그 덕에 대통령이 된 두 사람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옛 소련의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 중국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 부자 등 10명의 시신이 영구보존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고인 마케팅 정치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시신의 영구보존을 원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레닌은 어머니 묘 옆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스탈린이 미라로 만들어 모스크바 붉은광장 묘에 안치했다. 화장 뒤 산골하라고 유언한 마오쩌둥의 시신도 방부 처리된 뒤 톈안먼광장의 기념관에 안치됐다. 정통성이 약한 후계자들이 전임자 인기의 곁불을 쬐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그제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과 함께 “인권을 수호하고 공정한 법치를 행하는 검찰로 돌려놓겠다”는 글을 게재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야권에선 “본인이 탄핵시킨 노 전 대통령을 이용하는 것은 구차하다”는 등 조롱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여권에서도 “부글부글하는 분위기”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 복귀로 궁지에 몰린 추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을 끌어들여 지지층 결집에 나섰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이다. 부적격자의 고인 마케팅 정치는 역효과만 날 뿐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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