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미국 흑인 사망

'흑인 질식사' 경관 7명 불기소…'흑인 생명 소중하다' 현주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지난해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된 시민운동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공권력의 흑인 살인에 대한 분노와 그 이후의 형사 사법절차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흑인의 사망 사건은 은폐되거나 뒷전으로 밀리면서 흑인은 사후에도 동등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니엘 프루드 사건: 경관 7명 불기소

해가 바뀌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검찰은 흑인 남성 다니엘 프루드의 죽음에 관련된 경찰관 7명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했다.

경향신문

경관에게 체포돼 질식사한 흑인 남성 다니엘 프루드의 형 조 프루드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로체스터에서 아들 아르민 프루드와 함께 동생 다니엘의 사진을 들고 있다. 로체스터|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욕주 검찰총장인 레티샤 제임스는 이날 프루드의 사건을 대배심이 검토한 결과 그의 죽음에 관련된 7명의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배심은 한국 검찰의 수사심의위원회처럼 무작위로 소환된 시민이 참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구다. 수사심의위보다 법적 권한이 강해 대배심의 결정을 검찰이 바꿀 수 없다.

최초의 흑인 여성 검찰총장인 제임스는 자신이 다른 결론을 기대했다고 시인하며 “현재의 형사 사법체계는 무장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부당하게 살해된 사건에 대해 법 집행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프루드는 지난해 3월말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는 뉴욕 로체스터에 있는 친형의 집을 방문 중이었다.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그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옷을 벗은채 거리를 뛰어다녔고, 친형은 911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출동한 경찰은 프루드가 침을 뱉는 것을 보고 그에게 수갑을 채운 후 복면을 씌웠다. 그리고 길바닥에 프루드의 머리를 대고 짓눌렀다. 2분여만에 프루드는 질식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 이후 경찰이 이 사고를 프루드의 가족에게도 숨겼다는 것이다. 경찰은 프루드의 가족에게 그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프루드의 가족은 변호사를 통해 경찰이 프루드를 체포할 당시 촬영한 영상을 공개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사고 6개월 뒤인 지난해 9월에야 경찰은 영상을 공개했고 전모가 드러났다.

사건에 대한 수사가 뒤늦게 진행되면서 로체스터 경찰이 보다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한 로체스터 경찰관은 지난해 6월쯤 상급자에게 “우리는 사람들이 (프루드의 사건에서) 경찰관의 행동을 오해해 최근 전국적으로 발생한 비무장 흑인 남성 살해 사건과 이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프루드의 사건이 이미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결합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메일을 받은 상급자는 “그것은 지역사회에 증오를 만들 수 있고 폭력적인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체포 영상을 프루드 가족의 변호사에게 제출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해당 경찰관들은 현재까지 정직 상태로 내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형사처벌을 피하게 됐다. 다니엘의 형인 조 프루드는 뉴욕타임스에 “나는 내 동생을 도와달라고 전화했을 뿐이지 내 동생을 괴롭히라고 전화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뉴욕주 대배심이 지난해 사망한 흑인남성 다니엘 프루드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관을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23일, 대배심의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뉴욕주 로체스터 관공서 주변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뛰어넘고 있다. 로체스터|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은 통상 공개하지 않는 대배심의 조사와 관련된 회의록을 공개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이를 승인했다. 언제 회의록이 공개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제임스 검찰총장은 “사법체계가 경찰관의 불필요하고 결과를 책임지지도 않는 공권력 사용을 너무 자주 허용하고 있다”며 형사 사법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로체스터시는 대배심 판단 이후 일어날 수 있는 시위에 대비해 관공서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신시아 해리엇 설리번 로체스터 경찰서장 대행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역사회가 현재 집단적인 고통을 겪고 있음을 이해한다”며 평화적인 시위를 당부했다.

■아흐마우드 알버리 1주기, 민사 소송 제기

이날은 흑인 청년 아흐마우드 알버리가 사망한지 1주기가 된 날이기도 했다. 알버리의 어머니는 이날 조지아 남부 법원에 아들의 죽음에 연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경향신문

1년전 사망한 흑인 남성 아흐마우드 알버리의 1주기 행사가 미국 조지아주 웨인스보로의 한 교회에서 열렸다. 알버리의 어머니인 완다 쿠퍼 존스가 아들의 그림 옆에 서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버리는 지난해 2월23일 조지아주 글린카운티에서 평소처럼 조깅을 하다 숨졌다. 3명의 백인 남성이 차를 타고 그를 뒤따라 왔고, 그에게 총을 쐈다. 가해자 중 그레고리 맥마이클과 트래비스 맥마이클은 부자 지간이었고, 윌리엄 브라이언은 그들의 이웃이었다. 알버리의 가족들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실제 윌리엄 브라이언이 사고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트래비스 맥마이클은 그가 쏜 총에 맞아 알버리가 쓰러질 때 “엿먹어, 검둥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 NPR에 따르면 알버리의 가족이 제출한 소장에는 이들 3명 뿐 아니라 알버리의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지역 경찰관과 검사도 피고로 이름을 올렸다.

경향신문

1년 전 미국에서 사망한 흑인 남성 아흐마우드 알버리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조지아주 브런스윅에 모인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버리의 사건은 명확한 살인 사건이었지만, 맥마이클 부자는 사건 당일 체포되지 않았다. 맥마이클 부자는 지난해 5월7일에야 체포됐는데, 사건 발생 74일만이었다. 사건이 공개되고, 수사기관의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야 글린카운티 경찰은 지역검찰이 가해자들을 체포하지 말 것을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더 석연찮은 건 짧은 시간에 담당검사가 수차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사건을 맡은 두번째 검사는 그해 2월27일 사건을 맡기 전부터 경찰에 맥마이클 부자를 체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는 4월2일 자신이 맥마이클 부자와 친분이 있어 사건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을 밝힐 때까지 맥마이클 부자를 체포하지 않고 시간을 벌었다.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레고리 맥마이클은 한때 글린카운티 경찰서에서 경관으로 일했다. 이후에는 지역 검찰의 수사관으로 20여년간 근무했다. 심지어 그는 알버리를 절도 혐의로 수사해 기소한 적도 있었다.

네번째 검사가 사건 당시의 영상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고 나서야 제대로된 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대배심은 악의적인 살인, 중범 살인, 가중 폭행 등의 혐의로 총격에 직접 가담한 세 사람을 기소했다.

알버리의 가족들은 이번 민사소송 소장에 “피고들은 인종적 편견과 혐오,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아흐마우드 알버리에게서 법이 정한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박탈했다”고 지적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돌아온 광장, 제주도 ‘일호’의 변신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