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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이슈 차기 대선 경쟁

병아리색 민방위복이 잘 어울리는 대선주자 정세균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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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77

‘빵돌이’ 출신 정치인 정세균의 마지막 도전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한 성실성과 선공후사

이재명·이낙연과 여당 대선주자 ‘빅3’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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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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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에는 잠재적인 대선주자가 많습니다. ‘빅3’로 불리는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있습니다. 김두관 박용진 이광재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최문순 강원지사가 있습니다. 벌써 12명입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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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가운데 정세균 전 총리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어린 시절, 그리고 두 사람의 장점, 단점에 대해 정치 막전막후로 자세히 다룬 일이 있습니다.

▶ 바로 보기 : 이낙연의 선생님, 이재명의 아버지…그 따뜻하고 슬픈 이야기

이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선후보 경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니 그에 대해서도 한 번쯤 소개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정 전 총리는 5월 6일 발표한 전국지표조사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2%로 심상정 의원과 함께 6위를 차지했습니다. 1위부터 5위까지는 이재명, 윤석열, 이낙연, 안철수, 홍준표였습니다. 5월 7일 발표한 한국갤럽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도 1%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6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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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총리의 이력은 특이합니다.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을 지냈고 국무총리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장과 국무총리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 백두진 정일권 정세균 세 사람뿐입니다. 국회의장을 먼저 하고 국무총리를 나중에 한 것은 그가 유일합니다.

정 전 총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성품이 온화합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 기자들이 뽑는 ‘백봉 신사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남에게 욕을 할 줄 모릅니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고병국 서울시 의원이 최근 <법 만드는 청소부>라는 책에 쓴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그도 화가 나면 욕 비슷한 말을 할 때도 있다. 그가 하는 가장 심한 욕은 “야 이 사람아”이다. 얼마나 많이 잘못했는지는 그의 인토네이션(음의 상대적인 높이의 변화)을 잘 들어봐야 한다. 어이가 없을 때는 “야, 이 사람아.”, 조금 잘못했을 때는 “야 이~사람아···”, 조금 많이 잘못했을 때는 “야 이! 사람아!”, 정말로 심하게 잘못했다면, “야! 이! 사람아!!”다. 마지막 인토네이션을 듣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이런 말을 들은 날이면 가급적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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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만드는 청소부>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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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따로 아는 얘기도 있습니다. 정 전 총리는 누군가를 질책할 때 가급적 다른 사람들이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합니다. 야단을 맞는 사람의 자존심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정 전 총리는 화가 나면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화난 표정이 놀란 표정과 비슷해서 남들이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무총리 시절 고위 공직자를 한번 크게 질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직자는 자신이 총리에게 격려받은 것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정 전 총리는 병아리색 민방위복이 무척 잘 어울립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민방위복을 입으면 왠지 모르게 좀 어색한데 정 전 총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 전 총리의 성실성과 일솜씨는 문재인 대통령도 오래전에 인정한 바가 있습니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갑자기 물러나는 바람에 민주통합당과 선대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문재인 대통령은 2013년에 펴낸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당시 지도부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 준 분이 선대위 상임고문이었던 정세균 전 대표였습니다. 지도부 공백 상태가 오자, 자청하다시피 상근을 하면서 선대위의 좌장 역할을 기꺼이 감당해 줬습니다. 외부 인사들의 영입 등 선대위가 논의해 결정하기가 어려운 일들을 저 대신 감당해 줬습니다. 선거운동을 위해 전국으로 떠돌아다니는 저를 대신해서 회의를 관장하고, 책임감 있게 중요한 업무를 추진해 줬습니다.

정 전 대표는 당내 후보 경선 때도 언제나 선공후사의 원칙을 지키며, 모바일투표 논란 속에서도 경선이 파탄 나지 않도록 지켜줬습니다.

사실 정 전 대표는 정치적 경륜은 물론 분수경제론 등의 정책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저와 지지 기반이 겹치는 바람에 경선에서 피해를 많이 봤다는 미안함을 제가 갖고 있었습니다. 경선에서도 본선에서도 제가 신세를 많이 진 셈입니다.

이처럼 정가나 관가에는 정 전 총리의 인품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가 정치인으로 갈고 다듬어지기 전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정치인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기본적인 인격이 형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 전 총리가 짤막짤막한 수필을 모아서 4월 15일 수상록(隨想錄)이라는 이름의 책을 냈습니다. ‘코로나 총리 리더십을 말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책날개에 저자 소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산골에서 태어나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한 걸음씩 전진하는 인생을 살아온 민주주의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직장인 생활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다.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 제46대 국무총리로서 코로나 19 ‘방역사령부’를 지휘했다.”

너무 짧았습니다. 특히 ‘별이 쏟아지는 산골’과 ‘검정고시’가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다른 책을 찾아봤습니다. 정 전 총리는 2009년 후마니타스에서 <정치 에너지>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고백이 나옵니다. 앞부분 조금만 인용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게 늘 걱정이었다

나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즈음에 태어났지만, 전쟁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릴 적 대부분의 기억은 배고픔을 참아 내는 고통과 지긋지긋한 지게질이었다. 당시 누구나 어렵게 살았지만, 내가 자란 진안 산골은 논밭을 일궈 살아가기가 마땅치 않아 어려움이 더 했다.

이웃 마을만 가도 사정이 나았는데, 진안 능길 마을은 지형상 산으로 둘러싸여 주로 나무를 하고 소를 키워 살았다. 나중에는 산속 고지에 올라가 화전을 일구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산속에 들어가 주변에 불을 질러 화전을 만들었다. 불타고도 남은 나무뿌리들을 캐내느라 손목이 얼얼했다. 주로 감자를 심었는데, 하도 쑥쑥 잘 자라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그것도 한두 해 하고 나면 지력이 다해 땅을 버리고 내려와야 했다.

아홉 살 되던 해에 마을에 심한 흉년이 왔다. ‘밀기울’이라고, 밀가루를 만들고 남은 밀의 껍질로 수제비를 떠서 먹었다. 구하기 쉬운 산나물과 밀 껍질로 뜬 수제비였는데, 탄수화물 냄새만 맡으며 젖은 나물을 먹는 식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산나물이라고 하면 웰빙 식품으로 환영하지만, 나물로 배를 채우던 나에게는 그저 풀 냄새였고, 그런 가난의 냄새였다.

어린 나의 점심은 고구마 한 개였는데, 영근 고구마는 꽤 먹을 만했다. 캐온 고구마가 상할까 봐 방 한 켠에 짚으로 칸막이를 해서 보관했다. 산간 지방의 기온은 봄가을에도 갑자기 뚝 떨어지곤 해서, 잠자고 나면 바깥바람에 얼기 일쑤였다. 언 고구마를 보면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얼었다 녹은 고구마는 금세 썩는다. 모아 둔 고구마는 하나만 썩어도 주변에서 썩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언 것들을 골라내어 그 자리에서 삶아 먹어야 했다. 배 터지게 고구마를 먹는 호사를 잠시 누렸지만, 그것은 얼마간 먹을 게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런 포만감이 유쾌할 리 없었다.

어떻습니까? ‘별이 쏟아지는 산골’은 낭만적인 곳이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검정고시’는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초등학교는 나왔지만 중학교로 진학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에 학교가 없었고, 멀리 보낼 사정이 안 되었다. 1년 넘게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공부를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는데, 공부할 형편이 안 되었다. 당시 60원 정도 하던 수업료를 낼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거나,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몇 달씩 수업료가 밀려 중도 하차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해 온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고무래로 재를 그러모았다. 나는 ‘고무래 정’(丁) 자를 쓰는 의성 정 씨다. 벽에 기대어 놓은 고무래를 보면, 내 신세가 저 고무래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듬해 고등공민학교라도 가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그러라고 했다. 중학교에 준하는 과정인데, 정식 졸업장은 없어도 중학교 과정을 공부시켜 주었다.

배움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열심히 했고, 2년도 채 안 되어 검정고시에 붙었다. 그러고도 남은 1년을 마저 배웠다.

(중략)

고등공민학교를 마치고 한 해 동안 나뭇짐을 지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옆 동네인 무주의 안성고였는데, 배우고 익힐 게 영 시원치 않았다. 대처(大處)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전주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응시해서 합격했다. 전체 8등이었다. 산골에서만 잘한다는 소리를 듣다가 도시로 나와서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몹시 기뻤다.

입학한 뒤로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했고, 줄곧 교내 1등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고를 졸업하면 취직할 수 있었다. 먹고살 궁리에서 탈출한 기분이었다. 한숨 돌린 셈이었지만 그제야 어릴 적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늘 뭔가 아쉬웠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도무지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묻고 또 물었다.

몇 달을 전전긍긍하다가 인문계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시도는 해봐야 후회가 없을 성싶었다. 전주 시내의 신흥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께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고, 학자금을 면제받아 전학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먹고살 돈이 없었다. 사정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제도가 있었지만, 전학 온 학생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염치 불고하고 교장 선생님을 또 찾아갔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학교 매점에서 간식거리 파는 일을 주셨고, 그 덕분에 2학년을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친구들은 매점에서 빵을 파는 ‘빵돌이’라고 놀렸지만, 개의치 않고 학업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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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지 않습니까? 화전을 일구고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어린이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시 인문계로 옮겨 매점에서 빵을 파는 ‘빵돌이’를 하면서 학업을 계속한 것입니다.

그 이후의 삶은 압축하겠습니다. 신흥고 3학년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매점에서 해방됐습니다. 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삼수 끝에 1971년 고대 법대에 합격했습니다. 고시를 준비하다가 1972년 유신 체제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그만뒀습니다. 1974년 고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마친 뒤 주식회사 쌍용에 입사해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95년 사표를 내고 김대중 총재가 정계복귀 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해 1996년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자 정 전 총리는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요? 그 전에 우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스워트(SWOT) 분석 기법을 사용해서 ‘대선주자 정세균’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강점(strength) :

첫째, 화려한 경력과 높은 인지도입니다. 민주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거쳤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습니다. 대선주자에게 인지도는 필요조건입니다.

둘째, 안정감입니다. 그는 편안한 인상과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통합의 정치인입니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입니다. 야당 정치인들이나 야당 지지자들도 그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약점(weakness) :

첫째, 열성 지지층의 부재입니다. 그는 “사람 좋은 시골 아저씨 같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대 세력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약점입니다. 열성 지지층이 없으니 반대 세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출신 지역입니다. 그는 호남 출신입니다. 호남 출신은 본선 경쟁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인구가 적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현실입니다. 본선 경쟁력은 당내 경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회(opportunity) :

첫째, 그는 ‘코로나 총리’입니다. 9월까지 백신 접종이 예정대로 이뤄지면 그에게 유리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가 국무총리 퇴임 이후에도 코로나 상황을 계속 살피고 있는 이유입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과의 원만한 관계입니다. 그는 이른바 친문재인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반문재인이나 비문재인 정치인도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그를 도울 수 있습니다.





위협(threat) :

첫째, 이재명 경기지사입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에게 이재명 경기지사는 어쩌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일 수 있습니다. 그가 갖지 못한 장점을 이재명 지사가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잡기에는 지지율 격차가 너무 큽니다.

둘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입니다. 두 사람은 많이 닮았습니다. 호남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를 했습니다. 통합형 정치인입니다. 이낙연 전 대표 지지도가 빠지지 않는 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 지지도가 오르기는 쉽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 전 총리는 1950년생입니다. 벌써 70대에 들어섰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자리에는 다 올라갔습니다. 대통령만 빼고 말입니다. 그가 최종 목표인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세균 스타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리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수상록>의 첫 번째 글은 ‘쇼맨십’입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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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치인들은 쇼를 좋아합니다. 쇼맨십을 발휘하는 것도 재능이지요.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재미라면야 쇼맨십도 키워볼 만하고 저마다 유튜브 방송을 고민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좋은 정치는 아니잖아요? 나는 쇼맨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냥 체질에 맞지 않아요. 막 나서거나 설친다든지 시끄럽게 이벤트를 하는 것도 좀 싫습니다. 얼굴이 얇아서요. 진심을 전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정 전 총리는 오는 11일 ‘광화문포럼’ 기조 강연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 성장과 복지 등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힐 예정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공부모임인 광화문포럼에는 정 전 총리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 전 총리가 마침내 대선주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들고 나오는지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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