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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죽은 아들이 말해야 공무원 갑질 인정할 건가”…엄마의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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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9월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시 9급 공무원이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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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청 신입 공무원 A씨가 극단 선택을 한 사건에 관해 대전시 감사위원회는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신규 부서로 발령 받은 지 3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제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에 대한 징계 처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유족의 호소에 대전시가 자체 감사를 벌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결국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유족들은 징계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전시는 새내기 공무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징계절차를 즉각 진행하고, 정부와 국회는 법을 개정하여 공무원도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보호하여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A씨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다가 지난 9월 26일, 휴직 신청을 하루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는 올해 1월 9급 공채 공무원으로 임용된 새내기 공무원으로, 해당 부서에서는 3개월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당시 A씨의 나이는 만 25세였다.

청원인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9월 26일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시 9급 공무원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아들은 대전시청의 첫 부서에서 일할 때만 해도 상사, 동료들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다. 여자친구도 사귀면서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새내기 공무원이었다”며 “그런데 7월에 부서 이동을 하면서 너무나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A씨는 선배 공무원으로부터 ‘8시 전에 출근해서 과장님 책상에 물, 커피를 따라 놓으라’, ‘과장님들 책상 정리, 물 컵 정리하라’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 A씨가 이를 거절하자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청원인은 “팀장은 아들에게 ‘팀 내 모든 화분에 물을 주라’고 시켰고, 무슨 일만 하면 자리로 불러 하나하나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팀원들 모두 업무적으로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예 제 아들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대화에 끼워 주지 않았다고 한다”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만 있는 상황에서 제 아들은 8월 중순부터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숨이 잘 안 쉬어 진다’며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다”고 했다.

이어 “아들은 신경정신과 치료를 시작 한 후, 휴직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팀장에게 휴직 신청하겠다는 말을 한 뒤 무슨 말을 들었는지, 휴직 신청일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했다”며 “자신의 생일을 한 달 앞두고, 만 25세밖에 되지 않은 제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게 됐다”고 했다.

청원인은 “그런데 대전시에서는 제 아들을 두 번 죽이는 발표를 했다. 참고인들의 진술이 상반되어 조사의 한계를 느꼈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선배 공무원이 ‘일찍 출근해서 커피, 차를 준비하라’고 시킨 카톡 내용도 제출했고, 입사 동기들도 아들에게 들은 내용을 진술했다. 도대체 무엇을 쥐어 주어야 대전시에서 판단을 할 수 있나. 죽은 아들이 직접 와서 피해 내용을 진술해야만 갑질을 인정해 주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아들의 사건을 묻어두었다가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수사기관에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낸 결과통보서를 근거로 가해자들에게 아무런 징계처리도 하지 않은 채, 유야무야 넘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유가족들은 대전시장님이 즉각 감사절차 및 징계절차를 재개하여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에서 행정절차 하나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들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되 시에서는 시민의 한 명이었던 우리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즉각 조사해 달라”고 했다.

청원인은 “얼마나 버겁고 길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자신을 버려서까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을까. 가해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과 행동이 그들과 12시간을 넘게 있으면서 당해야만 했던 아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를 알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의 즉각적인 개정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있을 젊은 공무원들을 구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청원인은 “아들의 억울한 죽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묻히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며 “못다 핀 꽃 한 송이 우리 아들, 오늘도 엄마는 네가 무척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 감사위원회는 지난 2일 “A씨에 대한 직장 내 갑질 의혹을 행정기관에서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명확한 진상 조사를 위해 폭넓은 권한을 가진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시 감사관실은 동기들, 부서 동료 등 참고인 20여 명을 면담하고 A씨와 나눈 메신저 대화, 휴대전화 기록, A씨의 업무용 컴퓨터, 병원 진료 기록, 문자 기록 등을 확인했다.

감사위원회 측은 “참고인마다 증언이 다르고, 유족 측 주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답변에 상반되는 부분이 많았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유족의 궁금증과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수사를 맡기기로 했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수사 결과 갑질로 판명되면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김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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