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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전기차 전환 앞두고… 전 세계 곳곳에서 車회사 노사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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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부터 세계 2위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그룹을 이끌어온 헤르베르트 디스 최고경영자(CEO)는 이사회에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전기차 전환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수만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디스 CEO는 지난 9월 열린 이사회에서 “폭스바겐이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업체로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전기차 전환이 늦어질 경우 독일 내 3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기차가 미래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선제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량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폭스바겐 노조는 디스 CEO의 발언이 내연기관차를 생산하는 기존 공장의 구조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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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독일에서 열린 'IAA'에서 폭스바겐의 새로운 전기차 'ID.라이프'를 공개하고 있는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CEO./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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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CEO는 최근 독일 볼프스부르크 본사 인근에 최첨단 전기차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우리의 기존 공장은 테슬라에 비해 전기차 생산 시간이 세 배나 걸리는 등 효율성이 떨어졌다”며 “새 공장을 짓는 게 더욱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독일 베를린에 새로 지은 공장에서는 10시간에 차 한 대가 생산되는데, 폭스바겐의 최고 전기차 공장이라는 독일 츠비카우에서는 동일한 작업에 30시간이 걸리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고용 불안을 우려한 노조의 반발이 커지면서 디스 CEO의 거취를 논의하기 위한 그룹 내 특별위원회가 소집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디스 CEO는 “모든 공장 부지에 미래가 있다. (고용과 관련해) 아무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그는 “왜 계속 폭스바겐을 테슬라와 비교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고, 이런 비교가 많은 사람을 짜증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룹의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했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차 시대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인력 관리를 두고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내연기관차가 퇴출되고 전기차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기존 숙련 근로자 대부분이 ‘잉여 인력’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현재 내연기관차가 주력 제품인 자동차 산업 현장에서 종사자 수가 가장 많은 분야는 파워트레인과 배기계 등 부품 조립이다.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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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보쉬 근로자들./IG 메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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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비중이 높아지면 자율주행화를 앞당겨 관련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전장 부품 종사자 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기존 인력의 상당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요구되는 기술이 노동 집약적 기계 작업에서 화학·재료·전기전자·소프트웨어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새로 요구되는 기술은 단기간 교육만으로 습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자동차산업협회(VDA)는 2030년까지 유럽에서만 21만5000개의 일자리가 전기차 전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고,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는 2030년까지 7만5000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차(005380)그룹도 일찌감치 잉여 인력의 문제를 인식한 상태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5년 뒤 국내 생산직 일자리의 20~30%가 잉여 인력이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분쟁은 완성차 업체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사 보쉬의 독일 근로자들은 최근 대규모 파업과 시위에 나섰다. 본사가 뷜, 뮌헨, 아른슈타트 등 국내 3개 공장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으면서 근로자들이 반발한 것이다. 규모가 가장 큰 뷜 공장에는 2025년까지 1000명의 직원이 해고될 예정이다.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드는 아른슈타트 공장의 직원 100여명은 모두 짐을 싸야 할 처지이고, 뮌헨 공장에서도 265개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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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아이오닉 5'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 스마트 공장./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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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을 앞두고 완성차 업계의 분쟁 비용은 증가할 전망이다. 기존 근로자를 재교육해 새로운 산업 현장에 투입하려는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가진 독일 다임러는 베를린에 있는 가장 오래된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근로자를 재교육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원래 이 공장에서는 6기통 디젤 모터가 생산돼 왔는데, 앞으로는 전기모터가 생산된다. 다임러는 전기 모터가 디젤 엔진보다 생산 과정이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필요 인력이 더 적다고 인정하면서 공장 근로자 재교육을 위한 교육 계획을 밝혔다. 근로자 450명 정도가 교육 과정에 지원했고, 이중 15명이 교육에 선발됐다. 재교육에도 비용이 들지만, 다임러는 구조조정에 따른 갈등 비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공장에서는 2300여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노조 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직위가 보장된다.

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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