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등이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 국내 수출입업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 해 100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수출대금 회수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주요 시중은행이 벌써부터 수입기업의 신용장 거래 요청을 거절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특수기계 수출업체 A사는 최근 러시아에 신용장 거래로 수출한 제품 결제대금을 어떻게 회수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산 펄프를 수입·판매하는 B사 또한 국민·우리·신한 등 국내 은행 4곳에서 신용장 개설을 거부당하며 경영난에 직면했다.
신용장이란 발주처인 수입업체가 자신의 신용도와 거래은행 신용도를 활용해 판매처인 수출업체와 무역 거래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국제무역에서 가장 일반화된 거래 형태로, 수출업체는 은행을 통해 대금을 미리 지급받고 수입업체는 물건을 못 받을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입업체가 결제망 배제 등을 이유로 은행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은행이 수출업체에 선지급한 물품대금을 다시 회수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거래한 우리 수출기업들이 물건만 보내고 돈을 떼이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수입기업들 역시 신용장 개설이 막혀버리는 탓에 러시아와 무역 거래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스위프트 문제로 러시아와 수출입 거래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제재 여파와 대안 마련 등에 대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24일 가동된 무역협회의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대책반에는 26일 오전까지 30개사가 35건의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이 중 가장 큰 애로는 역시 이번에 문제가 된 스위프트 제재 등 대금결제 리스크로 총 15건이 접수됐다.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러시아 수출 규모는 99억8300만달러(약 12조원) 규모로 전체 수출의 1.6%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완성차(25억달러)와 자동차부품(15억달러)의 수출 비중이 40%를 넘어섰으며 철구조물, 합성수지, 건설중장비, 화장품, 선박 등이 수출품목 톱10에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2014년 크림반도 사태가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로 다음해인 2015년 대러시아 수출 규모가 반 토막 났는데 완성차(-62%), 타이어(-55%), TV(-55%), 아연도강판(-47%), 자동차부품(-39%) 등이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근 러시아에서 대규모 수주 실적을 올린 조선업계도 일제히 비상대책회의를 했다.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러시아와 계약을 맺은 선박 수주 규모만 1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선사를 상대로 조선 3사가 직접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규모는 1조8000억원에 달한다. 또 러시아 조선사가 자체 수주한 LNG선 관련 선박 블록, 기자재 등을 국내 삼성중공업 등에 재발주한 물량 역시 5조2000억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일본 선사가 국내 조선사를 상대로 발주한 10척 규모 LNG선 역시 결과적으로는 러시아가 발주해 추진 중인 북극 LNG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으로 이 역시 선가로 환산하면 2조원을 넘는 규모다. 이 밖에도 국내 조선사들은 북극해 얼음을 깨고 운항할 수 있는 쇄빙 셔틀탱커 등을 러시아에서 수주한 바 있다.
서방 진영의 러시아 스위프트 배제 조치로 러시아 현지에 거주하는 주재원과 유학생 등의 국제 송금 길까지 막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국내 금융권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현지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은 지난 24일부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대응반을 구성했고, 영업점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거래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는 등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스위프트 제재와 관련해서는 정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25일 은행권에 우크라이나 쪽 위험금융거래 연관 자료, 러시아 관련 외국환 거래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 등을 추가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미국 행정명령에 따라 외국자산통제국(OFAC) 제재 리스트 필터링을 추가해 외환 업무를 보고 있고, 미국의 추가 제재에 따라 수출입 서류 인수 등의 업무가 지연될 수 있음도 고객에게 알렸다.
제재에 참여한 외국 기업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도 부담이다. 러시아 대통령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6일(현지시간)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외국 기업들의 러시아 내 자산을 국유화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인테르팍스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이날 "제재를 가한 모든 정부와 관계를 재검토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외국 대사관 폐쇄를 경고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의 개인과 기업의 러시아 내 자산을 국유화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 전 세계 200여 개국, 1만1000개사 이상의 금융기관이 사용하는 국제금융전산망. 회원 은행 간 결제 서비스를 기반으로 세계 금융의 핵심 인프라스트럭처 역할 수행.
[한우람 기자 / 김혜순 기자 / 박윤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