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생활고에 수원 월세방서 극단선택 추정
“방에서 악취가” 이웃이 신고
엄마는 암, 두 딸은 난치병… “너무 힘들어요” 유서 9장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조철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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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2시 50분쯤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1층에서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 등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집 안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이웃의 얘기를 들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소방서의 협조를 얻어 현관문을 뜯고 들어가 방 안에 나란히 누워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외부 침입이나 타살 정황이 없어 이 집에 살던 A씨와 두 딸 B·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집 안에서는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A씨와 C씨의 유서도 발견됐다. 유서는 노트 9장에 띄엄띄엄 쓰여 있었다. 경찰이 부검을 실시한 결과 “시신의 상태 때문에 사망 시기나 원인을 추정하기 어려워 정밀 감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다.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수원시 권선구 연립주택의 출입문 옆 벽에 붙어있는 도시가스점검 방문 안내문./조철오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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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세 모녀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A씨는 암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투병을 해왔으며, 두 딸 B씨와 C씨도 희소 난치병과 정신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상생활이 쉽지 않아 외부 출입도 거의 하지 않고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주민들은 모녀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세 모녀는 2020년 2월 보증금 300만원, 월세 40여 만원에 계약해 12평짜리 이 집에 입주했다. 그러나 병원비 부담 때문에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집주인에게 “병원비 문제로 월세 납부가 조금 늦어질 수 있으니 죄송하다”는 메시지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모녀는 2011년부터 지인의 집이 있는 경기 화성시 기배동에 주민등록을 뒀지만, 실제로는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수원의 현 거주지로 이사할 당시 전입신고도 하지 않았다.
A씨 가족이 주소를 뒀던 화성시 기배동 주민들에 따르면 A씨 가족은 기배동 일대에서 살았지만 20여 년 전쯤 A씨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빚에 시달리게 되자 마을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기배동 한 마을이장은 본지에 “A씨 남편 부도 이후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주소지는 화성에 두고 수원에서 월셋집을 전전하면서 살았던 것으로 안다”며 “A씨의 장남이 택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3년 전쯤 갑자기 사망하고, 곧이어 남편도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세 모녀는 더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A씨가 주소를 등록한 화성시 집주인은 “사정이 딱해 A씨의 아들 부탁으로 주소를 우리 집에 뒀다”며 “여러 빚 독촉 관련 고지서가 오면 쌓아두다 버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A씨 가족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성시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이 지난달 11일 A씨의 보험료 16개월분(27만930원)이 체납된 사실을 통보해와 사회복지 서비스 신청 안내문을 우편으로 보냈다. 또 이달 3일에는 주민센터 직원이 기배동 집을 방문했으나 “A씨 모녀가 실제로 살지 않았고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화성시 관계자는 “거소가 확인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면 복지 시스템으로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만약 이들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렸다면 상황에 따라 월 120여 만원의 긴급생계지원비나 긴급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 등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만일 전입신고를 하거나 주민과 교류라도 했다면 통장이나 이웃이 어려운 사정을 파악해 복지 서비스 상담 등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복지 체계는 ‘신청주의’에 입각해 있어 복지 수혜자 본인들이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며 “위기 가구 발굴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14년 2월 당시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정말 죄송하다’는 메모와 함께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놔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다. 이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3년 전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으나 대상 조건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재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계층에 대한 지원 문제가 논란이 됐고,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된 법안 3개가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수원의 세 모녀는 주소지와 거주지가 달라 사회 안전망에 포착되지 못했고, 복지 서비스 신청도 하지 않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과 같이 등록된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른 경우에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한계가 노출된 만큼 지자체 간 정보 공유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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