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의상 벗고 떠나가는 뒷모습 아름다웠으면"
■ 방송 : JTBC 뉴스룸 / 진행 : 안나경
[앵커]
추석 연휴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실 분을 모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반가워하실 것 같습니다. 요즘 대학로를 들썩이게 하는 노년의 배우들 방탄노년단 가운데 한 분이시기도 한데요. 우리의 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오영수/배우 :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오영수/배우 : 네 잘 지냈습니다.]
[앵커]
아이들이 다 알아보고 사인해달라고 하고 그런 게 배우 인생에서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좀 익숙해지셨나요.
[오영수/배우 : 그렇죠.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적응이 돼서.]
[앵커]
다음 달에는 연극 러브레터 하신다고 들었는데 간략하게 소개를 좀 해주실까요.
[오영수/배우 : 초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마음속에 그리던 남녀가 그 사랑 얘기를 이렇게 편지로 주고받은 주고받는 얘깁니다. 이게 낭독 연극인데.]
[앵커]
혹시 연애 편지 많이 써보셨어요?
[오영수/배우 : 연애 편지는 뭐 그렇게 많이 안 썼는데. 초등학교 때 생각했던 어떤 학생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이 있습니다.]
[앵커]
이거 아내 분께서 혹시 보셔도 되나요.
[오영수/배우 : 아 괜찮습니다. 그냥 마음 속에만 안고 있었던 그 여학생 지금도 기억이 나죠. 한 오십대쯤 돼서 봤어요. (아 그래요?) 음… 안 보고 왔어야 되는데.]
[앵커]
제가 선생님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 보니까 몇 가지 숫자들이 좀 떠오르더라고요 1과 56인데 어떤 건지 감이 오시나요.
[오영수/배우 : 1과 56.]
[앵커]
한 번 하나씩 그럼 풀어볼게요. 먼저 '1'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오징어 게임에서도 오일남, 게임번호 1번이셨고, 그리고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상을 받으셨잖아요.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이렇게 1등 첫 번째 이런 것들과 좀 인연이 많으셨어요. 어떠세요.
[오영수/배우 : 뭐 별로 없었습니다. 네 그래서 그렇게 또 의식도 그렇게 깊이 안 했고. 근데 이제 앞서가야 되겠다, 먼저 가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갖고 있었죠. 그런데 이제 그것이 나이가 조금 지나다 보니까 한 오육십쯤 되다 보니까 거기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앵커]
상 받으셨을 때,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 라고 말했다'라고 하셨는데 이걸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 궁금했어요. 왜냐하면 '처음으로'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뭉클했고 그리고 '대단하다' 이런 표현이 아니라 '괜찮다'는 표현을 쓰셔서. 스스로한테 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신 걸까요.
[오영수/배우 : 조금 저는 제 인생이 그렇게 좀 부정적이라고 할까 좀 내 스스로 나를 생각할 때 긍정성보다는. (좀 엄격하게) 맑음보다는 좀 흐린 날들이 많았던 내 인생인데. 내가 아 그래도 한 가지 일에 내가 이렇게 쭉 일관성 있게 지내왔다 거기에 대한 긍정이죠. 그래서 (흐뭇한 마음) 그렇죠, 그래서 그냥 괜찮은 놈이구나.]
[앵커]
제가 만약에 선생님 손녀나 딸이었으면, 그동안 그 긴 세월을 그렇게 조용히 묵묵히 갈 길 걸어오셨으면 이제는 좀 그냥 마음껏 누려도 보세요. 이런 마음이 들 것 같더라고요.
[오영수/배우 : 저도 뭐 조금 순간적으로는 자제력을 잃고 그런 생각도 했어요. 그때 그런데 마침 연극계에서 작품을 하나 의뢰가 와서 아 거기다가 지향점을 찾아 잡아야 되겠구나 해서 마음을 정리했죠. 그때.]
[앵커]
그래서 이제 바로 이어서 할 숫자가 56이에요. 연극 연기 생활을 그동안 해오신 세월들 56년.
[오영수/배우 : 어떻게 이렇게 계산을 다 하셨어요.]
[앵커]
그동안 200편 넘는 연극을 해 오셨잖아요. 어떤 역할이 가장 마음에 오래 머물러 있었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오영수/배우 : 제가 30대 후반에 파우스트라는 역을 했어요. 괴테에. 그게 그때 아주 제대로 소화를 못 했죠. 한마디로 엉망이었죠. 관객은 엄청나게 밀려오는데 그런데 제일 못한 그 파우스트가 제일 마음에 남습니다. 아 그게 또 하나의 자양분이 돼서 그때부터 자성이 일어나고 스스로.]
[앵커]
혹시 그 젊은 시절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중에 어느 게 더 마음에 드세요.
[오영수/배우 : 아무래도 지금이 나은 것 같습니다.]
[앵커]
오일남 대사 중에 하나가, '뭘 하면 좀 재미가 있을까', 여기서 그 많은 게임들이 시작이 된 거였잖아요. 요즘 선생님한테 제일 재밌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연극 말고도 다른 게 있으신가요?
[오영수/배우 : 지금은 연극 하나만 지금 매듭을 짓기도 어렵습니다. 얼마 안 남았는데.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라는 작품에 나오는 마법사가 마지막 무대에서 떠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내 마법의 옷을 좀 벗겨주십시오, 족쇄를 풀어달라'고 그래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무대의 옷을 좀 벗어버리고 내가 좀 무대를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관객 여러분이 좀 도와주십시오, 그런 기분으로 그 역할을 했거든요. 떠나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앵커]
근데 관객 입장에서는 놓아주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한참 뒤에. 오늘 저희가 두 가지 숫자 얘기했는데 혹시 둘 중에 더 마음에 드는 숫자 있으세요. 1은 조금 최근에 맞이하신 숫자고.
[오영수/배우 : 56년을 했는데, 그래도 한 미수까지는 좀 해야 되지 않을까.]
[앵커]
88세 정도. 더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에미상 시상식 참석하러 미국으로 떠나신다고 하는데 조금 여행도 하실 시간이 있으신가요?
[오영수/배우 : 내가 지금 연습하고 있기 때문에요. (연극 연습?) 네네 러브레터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 시상식만 끝나고 바로 귀국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그래요. 역시 열정이 아직 충분하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행복하게 만끽하고 오시기를 다같이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오영수/배우 : 네 고맙습니다.]
[앵커]
배우 오영수 씨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영수/배우 : 감사합니다.]
안나경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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