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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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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전담반 SIU]⑫ “배탈 났으니 돈 내놔”… 전국 식당 돌며 5000만원 뜯어낸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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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일러스트=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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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서 비닐과 휴지가 나왔다. 이미 이물질이 포함된 음식물을 삼킨 것 같은데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


서울 광진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한 손님의 항의를 받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주방 환경 등을 볼 때 조리 과정에서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 안에는 손님의 지적대로 비닐 조각이 들어가 있었다. 결국 A씨는 손님에게 사과를 한 뒤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손님은 며칠 뒤 음식을 먹은 가족 모두가 장염에 걸려 설사를 했다며, 보상을 요구했다. 이물질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A씨는 별 수 없이 자신이 가입한 보험사에 배상책임보험 사고를 접수했고, 보험사는 이들 가족에게 보험금 135만원을 지급했다.

경기 의정부의 한 족발 가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부부가 족발과 해물파전을 배달시켜 먹은 뒤 배탈이 났다며 점주에게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점주는 음식이 상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부정적인 후기 글이 올라와 식당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보험사에 사고를 접수했다. 결국 이 부부 역시 배상책임보험을 통해 점주로부터 보험금 295만원을 받았다.

이처럼 주문한 음식을 먹고 복통·설사 등을 호소하며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정도로 흔한 사례다. 그러나 B보험사의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의 눈에는 이들 사례가 보험사기 정황이 짙다고 보였다. 서울 광진구와 경기 의정부에서 벌어진 두 사건에서 보험금을 받아간 사람이 모두 장모·노모씨 부부로 동일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들 부부는 음식을 먹고 식중독 등에 걸렸다는 이유로 1년 사이 이 보험사에서만 7차례에 걸쳐 1000만원이 넘는 배상책임보험금을 타냈다. 짧은 기간 수차례나 비슷한 상황이 한 부부에게만 벌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판단한 보험사는 이들 부부를 경찰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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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의 한 음식점 관계자가 영업 준비를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계 없음./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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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개월이 넘는 검찰·경찰 수사 끝에 이들 부부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들은 전국 음식점·마트·편의점 등 22곳을 돌며 음식을 사 먹고는 식중독이나 장염에 걸린 것처럼 꾸며 배상책임을 요구해 보험금을 뜯어냈다. 이들이 지난 2018년 9월부터 약 1년 동안 가로챈 보험금은 4096만원에 달했다.

음식에서 비닐과 휴지가 나왔다는 주장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들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몰래 음식에 이물질을 넣은 뒤 점주를 불러 “배상을 하지 않으면 소셜미디어(SNS)에 (관련 내용을) 올리겠다”, “언론에 고발하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민원을 넣겠다”는 등의 갑질을 했다. 식중독·장염에 걸렸다는 것도 허위로 드러났다.

이들 부부는 식당 주인들이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을 통해 거액의 보험금을 챙겼다. 배상책임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제3자에게 입힌 피해를 대신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특히 ‘음식물 배상책임보험’은 손님이 식당에서 먹은 음식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으로 소규모 자영업자는 물론 음식을 판매하는 사업자라면 꼭 들어야 할 보험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급 규정이 다소 애매한 탓에 음식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정말 음식 때문에 탈이 났는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밝혀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점주와 손님이 짜고 배상책임보험금을 타낸 뒤 이를 나눠 갖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배상책임보험은 애매한 기준 때문에 손해율이 높은 보험 중 하나”라며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한테 허위가 의심되니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 결과 장씨·노씨 부부의 보험사기 행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차에 일부러 몸을 부딪히거나 타이어에 발을 들이미는 등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으로 2019년 3월부터 9개월 동안 합의금 명목의 보험금 2142만원을 받아냈다.

이들은 보험금을 더 타내기 위해 미성년자 딸 4명을 차에 태운 뒤 지나가는 다른 차를 일부러 들이받았다. 또 지인 2명과 짜고 서로 접촉사고를 낸 뒤 마치 온 가족이 상해를 입은 것처럼 가장해 보험금을 수령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 부부에게는 징역 2년 6월의 실형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학준 기자(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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