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이슈 교권 추락

문제학생 분리 후 누가 담당? 민원 자동처리는 언제쯤? 교권 대책은 '경착륙' 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갈 길 먼 교권보호]
교육부 고시 학칙 반영 과정에서
교장은 분리지도 책임회피 분위기
상담실을 분리장소로 일방 지정도
챗봇·예약상담 등 조치는 하세월
한국일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교사가 '교육부와 국회는 교사를 보호하라'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초등교사노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교사의 통제를 벗어난 학생이라면 교장, 교감이 맡아 지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교육당국의 교권보호 대책 가운데 일선 교사들이 특히 기대를 걸었던 '수업 방해 학생의 교실 밖 분리 지도'를 두고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반문이 부쩍 잦아졌다. 교육부는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면서 구체적 시행 방안을 학칙에 위임했는데, 분리 지도 책임자는 당연히 학교 관리자여야 한다는 교사들의 생각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학칙이 속속 개정되고 있어서다. 담임 교사가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단계별 민원 시스템'은, 교육당국에 문의할 때마다 "협의 중"이란 답만 돌아온다는 게 교단의 전언이다.

올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교사들 스스로 교권 회복 공론화에 매진한 결과 9월 '교권 4법' 통과와 교육부 고시 시행이라는 결실을 봤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교사 혼자 문제학생과 악성 민원을 감당해야 했던 이전과 달라졌다는 체감도, 그럴 거란 기대도 별로 없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교장실은 빠지고... 상담실만 붐비나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선 학교는 문제학생의 교실 밖 분리 조치 세부사항을 학칙에 반영하는 작업에 분주하다. 학칙 개정 시한은 다음 달 31일로 한 달 남짓 남았다. 그런데 개정 학칙이 윤곽을 드러낼수록 '문제학생 분리 조치'는 교사들이 교권 보호 법제화 이후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현안이 돼가는 분위기다.

상당수 학교가 문제학생 분리 조치 절차에서 교장·교감의 역할과 책임을 학칙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는 게 교사들의 핵심적 불만 요인이다. 대전의 A초등학교 교장은 지난달 말 학생 분리 공간 지정을 논의하면서 '관리자와 교직원, 상담교사가 지정장소로 인솔해 지도하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내심 지정장소 1순위를 '교장실'로 상정했지만, 교장은 협의 형식을 취한 후 결국 자기 뜻을 관철해 개정 학칙에 '교무실 및 관리자 지정장소'를 학생 분리 공간으로 명기했다.

A학교는 개정 학칙에 문제학생을 분리 요청하며 학생을 인계할 대상을 '학교장 또는 교직원'으로 규정했다. 대전교육청이 일선 학교에서 교육부 고시를 학칙에 반영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지난달 20일 공개한 학생생활규정 예시안에 인계 대상을 '교장(교감)'으로 정한 것과 비교하면 관리자 부담을 덜었다는 지적이다. 또 교육청 예시안은 분리 조치된 학생의 부모에게 지도 시간과 사유를 사전 통지하는 자를 '학교장'으로 지정했지만, A학교 학칙에는 '학교장'이 빠졌다.

이 학교가 남다른 것도 아니었다. 대전교사노조 등에 따르면, 대전의 B·C 초등학교는 문제학생 인계 대상을 각각 '교직원'과 '학년 부장'으로 지정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1곳과 중학교 2곳은 학부모에게 분리 지도 사실을 통지하는 주체를 '관리자'나 '학교장'이 아니라 '교직원'으로 정했다.

엄밀히 따지면 교장도 교직원에 포함된다지만 교단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교사는 "모든 교직원이 문제학생 분리를 도와줄 인력이라면, 학생 통제가 어렵다며 교실에 비상벨이 울렸을 때 교장이 달려올 일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대전교육청은 교사들 민원에 따라 교장 역할을 약화했거나 교내 의견 수렴이 미흡했다고 판단한 약 10개교에 사실상 학칙 재검토를 제안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장이 책무성을 갖고 진두지휘하는 게 맞다는 취지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은 "교사가 자존심 상하는 걸 감수하며 담당 학생의 분리를 요청할 정도면 혼자 감당하기 힘든 상태"라며 "교권 회복 공감대가 높을 때마저 앞장서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관리자가 교사들에게 가혹한 무기력감을 안긴다"고 했다. 경기 지역 중학교 3학년 부장교사는 "분리 운영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교사 순번제로 가는 학교가 많고 결국 교사 모두가 '돌려막기'하는 구조"라며 "동료에게 부담을 안 주려 학생 분리를 안 하고 참고 말 것"이라 했다.

비교과 교사에게 궂은일을 전가하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D·E 초등학교 등은 최근 '위클래스'(상담실)를 학생 분리 장소로 정했다. 상담교사가 학생의 얘기를 경청하며 신뢰관계를 형성하다가 문제학생을 받으라는 알림을 받게 될 판이다. 여러 학교는 부장교사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상담실을 분리 공간으로 결정하고 상담교사 등 비교과 교사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서울초등전문상담교사협회 관계자는 "위클래스가 분리 훈육 장소로 확정됐거나 확정될 기류여서 상담이 어려워질 상황이라고 호소한 상담교사가 한 달간 1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F초등학교에선 상담교사가 전화 상담에 집중하려 문을 잠갔으나 교감이 비밀번호를 알아내 상담실로 들어와 분리학생을 훈육하는 일도 있었다. 학교 상담실은 장난감, 인형 등으로 편안한 상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 터라, '문제학생을 가급적 우호적 장소로 보내지 말라'는 교육부 고시 해설서와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교사 모두의 문제인데... 시도별 지침 판이"


교육청부터가 학교 관리자에게 교권 보호 책임을 부여하는 일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대체로 학생생활규정 예시안에 학생 분리 지도 절차의 책임자, 장소 등을 세부화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학교별 여건, 교장과 교사 간 갈등을 의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기 지역 교장·교감 지구장학협의회는 최근 경기교육청에 "생활지도는 교사 책무이니 교장·교감에게 떠넘기는 매뉴얼을 만들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대구·제주·울산 교육청 등은 분리 지도 과정에 '관리자' '학교장' '교감' 등의 역할을 규정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시도별로 지침에 차이가 나니 혼선과 갈등,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국가공무원인 교사 전체에 적용되는 문제인 만큼 국가에서 통일성 있는 입장을 견지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행동 학생이 분리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조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현장의 어려움이다. 수도권 초등학교 교사는 지난달 미술시간에 반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이를 제지하는 자신에게 폭력적 행동을 한 학생을 분리하고자 교무실에 연락했다. 하지만 학생이 교실에서 나가기를 거부하자 교감이 피해 교사에게 "학생을 억지로 데려가긴 곤란하다. 진정되길 기다리자"고 해서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계속되는 악성민원, 민원처리 시스템은 언제쯤


교육당국은 올해 8월 교사들의 민원 응대 부담을 덜어주고자 단계별 민원 처리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챗봇 개발(1단계)로 단순 민원을 처리하고, 교육정보시스템(NEIS·나이스)과 연계해 부모 서면 상담(2단계) 및 상세 예약 상담(3단계)으로 진행되는 체계를 갖춘다는 게 골자였다.

경기교육청은 그달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여태 진척이 없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소관 부서들이 논의 중"이라며 "민원 면담실 조성 등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민원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민원 창구 일원화' 등도 현장에서 고대하는 대책 중 하나다.

교사 보호 조치가 늦어지면서 학교 현장에서 폭언 등을 수반한 과도한 민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남권 초등학교 교사는 이달 초 자녀의 짝으로 발달장애아동을 배정하고 모둠(조)을 구성한 데 불만을 품고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로부터 폭언을 들었다. 교감이 있는 자리였다. 생활지도 고시에는 '폭언 시 상담을 즉시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교감은 중재 등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피해 교사 측의 호소다. 이 학부모는 저녁에 학교와 학부모 간 소통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 후 답장을 강요했고, 교사가 이튿날 짧게 답한 것을 문제 삼아 "교사 자질이 없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