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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 (월)

공항으로 문제해결하자? 그러면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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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경기도 화성 배터리 공장의 참화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한국은 무척 성공한 나라이지만 생명안전, 이주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를 살펴보면 선진국이라 하기 어렵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 낮은 출산율, OECD국가 중 최고의 산재 사망률 등은 한국의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이번 사고가 난 이후 외신들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낮는 출산율로 제조업의 일자리를 이주 노동자가 채우면서 이들에 대한 기본적 안전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밤 늦게 여성이 혼자서 다닐 수 있는 나라이지만, 산재사망률을 보면 누구나 안전한 나라는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선진국의 아이들로 태어났지만 군대에 가거나 노동현장에 가면, 자신들이 알았던 선진국 대한민국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생활을 한 유럽 청년들은, 이곳의 노동 환경을 알고 나서 여기서 취직을 하고 계속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한국의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격차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의 이중구조, 시설화된 돌봄, 극단적 교육경쟁과 교육비용, 일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 등 성공한 나라인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넘쳐난다. 한국은 외형적 성장에 비해 사회의 질적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과제는 양적 성장과 외형적 성장을 어떻게 사회의 질, 사회의 성격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필자가 살고 있는 부산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때로는 더 심화된다. 부산의 경우에도 사회적인 여러 통계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암울하다. 동과 서의 건강상의 격차는 상당하고, 일자리가 없기에 청년들은 부산을 떠나고자 한다. 부산에는 단순히 기업과 자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도 부족하다는 지역의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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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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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행정역량, 공공 서비스의 문제는 서울과 비교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교통체계나 안전 등의 문제가 후진적이고, 또한 도서관 등 도시의 공공기관과 문화기관 등 시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가 상당히 부족하다. 서울에서는 도서관 공유공간 청년기본소득 등 공공적 서비스로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리던 것들이 부산에 없는 것이 무척 많다. 마트, 백화점 등 시장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은 부산에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구매가능하지만, 공공서비스의 수준은 낙후되어 있다. 공공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니, 모든 걸 시민들은 상품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산은 서울에 비해 참 살기 좋은 점이 많다. 일단 부산은 바다의 고장이기도 하고 산의 고장이라서 참 좋고 서울에 비교해 미세먼지가 덜 심각하다. 타지에 와서 부산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부산을 떠나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최근 청년들에게 미세먼지와 높은 지가의 수도권은 반드시 매력적인 삶의 터전은 아니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한 청년은 부산은 바다도 있고 산도 있어서 너무 좋다고, 여기에서 계속 일하고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산의 도시의 개발과 산업 지표를 보면 참 난감하다. 제조업이 중시되었던 부산의 공장들이 부산 외곽으로, 혹은 동남아로 이동해간 이후 부산은 새로운 도시의 활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노동비용으로 인해 공장이 옮겨가고 선진국이 된 이후, 어느 도시나 발전 이후의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사회들은 창의산업, 문화경제 등을 활성화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디지털 인공지능 등 혁신 경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기술을 통한 혁신, 문화를 통한 삶의 질, 그리고 민주주의와 참여를 통해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문화 형성 등이 중요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사람의 자리와 역할,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회 혁신을 위한 기본이다. 콘텐츠나 첨단기술에 기반해 도시의 혁신은 가능하다. 부산과 비슷하게 항구도시이지만 지역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가오슝에는 최근 TSMC가 공장을 세우고 엔비디아도 이곳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텍사스의 오스틴으로 이전도 많이 하고 새로운 혁신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라는 축제가 있어서 테크 혁신, 문화축제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가 국제적으로 진행된다. 공항이 아니라, 콘텐츠가 있기에 사람이 모인다.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해도 변변한 공항이 없어도, 콘텐츠가 있고 문화가 있고 기술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그곳을 찾아간다. 공항을 짓는다고 없던 콘텐츠, 문화, 혁신기술이 생길까? 공항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항이 생기면 부산이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만병통치약처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 기대를 했던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정말로 공항이 생기면, 부산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부산에 살고 싶은 마음의 청년들이 부산에 남아 멋진 바다와 산을 즐기며 살 수 있을까? 혁신 클러스터와 문화 콘텐츠의 창작 공간이 생겨날까? 나도 그랬으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서, 콘텐츠와 문화, 기술혁신은 공항이 생긴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항이 만들어진다고 공항 주변의 공단의 이주노동자의 처우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작업장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다. 공항이 만들어진다고 자살률이 줄고, 출산율이 증가하고 산재가 감소하고, 부산의 동서 건강격차가 사라질까? 지역불균형 문제가 한방에 해결될까? 과연 그럴까? 공항을 짓기 위한 천문학적 예산, 우리에게 어떤 사회적 효용을 가져다 줄지, 사회적 편익을 면밀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공항부터 짓고, 공항으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주장 믿을 수 있을까?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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