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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 (수)

[세상사는 이야기] 길게 보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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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의사결정에 관한 우리 자신의 행동을 한번 돌아보자. 나는 주식 투자를 할 때 길게 보는가, 아니면 매일매일의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자녀의 진로를 생각할 때 대학 입시까지만 생각하는가, 아니면 자녀의 30대, 40대 모습도 그려보는가.

'나는 근시안적인 선택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초 스탠퍼드대에서 수행했던 마시멜로 실험이다. 장기적인 차원의 이득이나 손실보다는 당장의 이득과 손실에 대한 예측이 사람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많은 연구 결과가 밝히고 있다. 이처럼 바로 눈앞의 손익보다 중장기 관점에서 결정하고 행동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중장기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길게 보아야 한다.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인생이 워낙 길어졌고, 조직과 사회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생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장수 시대 21세기에 더 공감되는 명언이다.

개인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길게 보지 못했을 때 시간이 지나 큰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는 쉽게 꼽을 수 있다. 젊어서 건강 관리를 잘 못하면 이후의 수십 년을 내내 힘들게 살 가능성이 높다. 긴 안목으로 역량, 연금, 직업, 관계, 취미를 준비하지 않으면 인생 후반전이 어려워진다.

한국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는 어린이와 초·중·고 학생들의 선행학습도 마찬가지다. 선행학습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얻는다. 앞으로 배울 것을 미리 학습해두면 아무래도 시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직접적인 효과는 딱 대학 입시까지다. 그 이후 100여 년에 걸친 개인의 인생에서 선행학습이 주는 추가적인 혜택은 거의 없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15살에 배워야 할 것을 8살, 9살에 배운다고 생각해보라. 한창 놀아야 할 어린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길고 길어진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선행학습은 이득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생물종이지만, 15년을 넘어서는 미래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120세 장수 시대가 시작된 이제는 긴 안목을 가지고 15년, 20년 후의 미래도 생각하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개인에 비해 사회는 더 영속성을 지닌다. 올바른 방향으로 지속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는 쉽지 않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 개인이 긴 안목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교육, 평생교육, 저출생, 고령화, 불평등, 노동개혁, 국민연금, 지방분권 등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가 정말 많지만, 어느 것 하나도 중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일관되게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긴급성이 중장기 관점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속적인 위기에 휩싸인 개인과 조직은 중장기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조급할수록 오히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 꼬이기만 할 뿐이다. 난제일수록 길게 보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풀어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긴 안목을 가지게 되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이제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것들에 더 초점을 둘 때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그 개인과 조직,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속 성장할 수 있다.

[김현곤 국회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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