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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터놓고 얘기합시다” 썰전 벌인 법학자들…개미투자자 보호냐, 경영할 권리 보장이냐 [법조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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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한국 주식 사면 뒤통수 맞는다고, 미국 주식을 산다고 합니다. ‘한국상법은 주주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너무 널리 퍼져 있습니다”(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사의 의무를 무작정 강화하는 것은 소극적 경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기업(주주)의 이익 확보는 이사의 의무와 책임의 균형점을 찾아 이사의 공격적인 경영을 촉진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습니다”(권용수 건국대 교수)

“결국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판사들이 적극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조문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윤승영 한국외대 교수)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넣자는 상법개정안이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전문 법학자들이 모인 ‘한국상사법학회’에서도 지난5일 특별학술대회를 열고 법학계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가졌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상사법학회 주최로 열린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상법 개정론의 검토’ 특별학술대회다.

충실의무를 도출하는 근거가 되는 신인의무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위해 일하는 수탁자가 일을 맡긴 타인(위탁자)에 대해 갖는 의무를 뜻한다. 기존에 논의되는 상법개정안(‘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 ‘이사는 회사와 총주주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21대 국회 박주민 의원안)은 이사 - 회사 - 주주, 관계에서 이사 - 주주간에도 직접적인 책임관계가 있다고 해석될 여지를 만든다. 이사가 회사 뿐만 아니라 주주의 일을 직접 맡았다는 생각으로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할 의무가 있다면, 이를 어겼을때 책임이 발생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안강현 상사법학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오늘 학술대회는 보시다시피 아무런 후원이나 협찬이 없다”며 “국민을 향한 상법 개정의 당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순수한 취지에서 마련된 대회이므로 자유롭게 각자의 소신을 제시하셔도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발표자들은 인수합병, 물적분할 등의 경우에 이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견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입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자칫 이사들의 경영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법체계의 정합성을 고려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당부다.

독일 = 회사는 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 이사는 회사에 대한 의무 이행
매일경제

정대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독일 사례를 분석해 발표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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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주제발표는 독일의 사례를 분석한 정대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그는 독일 주식법은 미국과 달리 주주에 대한 이사의 직접적인 충실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데, ‘회사의 (주주 등에 대한) 대외적 책임’과 ‘이사의 (회사에 대한) 대내적 책임’ 원칙이 작용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사의 업무집행으로 주주에게 직접 손해가 발생하면 주주가 회사에 대해 주주 이익 보호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묻고, 회사는 해당 이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사의 대외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법경제학적으로는 자산을 여러 회사에 투자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주주와 달리 위험분산이 어려운 이사에게 대외적 책임을 요구하게 되면 이사의 활동이 과도하게 소극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이로 인해 결국 회사의 발전과 주주의 부 증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소송)이 남용될 가능성도 고려됐다.

하지만 이사의 대외적 책임이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다. 이사의 과실로 인한 불공정한 합병비율, 신주인수권의 위법한 배제 등으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거나(지분의 희석), 회사 구조조정때 참여권이 침해되면, 주주는 사원권 침해를 근거로 이사에 대해 직접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는 불법행위책임을 근거로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한국의 기존 제도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8개 유럽 국가 중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직접 인정하는 국가는 예외적인 경우를 전제로 4개국에 불과하고, 예외적인 불법행위는 자본시장 관련법을 통해서도 주주를 보호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조직재편 때 주주의 지분율이 부당하게 희석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총론에 해당하는 상법 개정사안이 아닌 개별적인) 입법의 결여가 문제의 원인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자본시장법에 따라 합병비율 산정이 이뤄지면 불공정한 합병비율이어도 면죄부를 주거나, 물적분할때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 차단규정에 흠결이 있는 점 등을 입법을 고려할 수 있는 예시로 들었다.

일본 = 보수적 경영 타파하기 위해 ‘이사 책임 경감’ 제도 정비
권용수 건국대학교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일본의 법체계와 시사점’이라는 발표를 통해 한국과 비슷한 법제도를 가진 일본의 사례를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해석론과 판례에 따르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의무는 현행 법체계로부터 당연히 도출될 수 있는 것”이라며 “다만 의무를 어느 수준에서 요구해야 하는지는 고민해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사의 의무를 지나치게 엄격히 요구하면 이사의 경영 판단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고, ESG 등을 얘기하며 주주 이익 극대화 외에 이해관계자들까지 고려하도록 하는 오늘날의 실무 관행, 규범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2012년12월 아베 내각이 출범한 후 기업의 공격적인 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이사의 책임을 경감하는 제도 정비가 이뤄졌다. 일본 기업의 근본적인 문제가 이사들의 보수적 경영, 안일한 생활의 향유(과소 투자)에 있다고 판단해서다. 임원의 책임한정계약 대상 확대, 보상계약 제도 도입, 임원 등 배상책임보험계약(D&O 보험) 제도 도입 등이 이때 이뤄졌다.

그는 “입법이 만능은 아니다. 에가시라 교수는 회사가 올라타 있는 기반, 즉 주주, 경영진 양성선택 시스템, 법원이 변하지 않는 한 회사는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며 “합병 등 조직재편 장면에서 소수주주의 이익 보호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면 일본처럼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 합병 등 조직재편 때 이사 신인의무
매일경제

손창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미국 사례를 주제발표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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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 연세대 교수는 ‘미국 회사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와 그 시사점’을 발표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이사와 주주 사이에 직접계약이 아니어도 신인의무(수탁자의무)가 발생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영미법 특유의 법리”라며 “미국의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는 판례법상 인정되는 법적 의무이고, 성문법상 인정되는 의무는 아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미국에서 이사의 신인의무(Fiduciary duty)는 주의의무(Duty of Care)와 충실의무(Duty of Loyalty)를 모두 포함한다”며 “주의의무는 회사를 위한 최선이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할 적극적 의무이고, 충실의무는 이해충돌상황에서 자기 또는 제3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할 소극적인 의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미국 판례를 참고해 이사의 의무를 포괄적인 의무로 규정할 경우 이사의 의무 범위에 대해 해석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에서도 이사의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는 포괄적인 의무지만 실무상으로는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정된다. 예를들어 합병 등 조직재편 과정, 특히 회사가 매각되는 경우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 부담을 명시하는 충실의무 도입은 한국 회사법리상 타당하지 않다”며 “하지만 최소한 주주의 이익침해가 가장 문제되는 합병, 주식교환, 이전에 한해서 주주의 이익보호의무를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합병(교환)비율 결정은 주주의 재산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이사가 주주를 대신해 결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합병비율을 낮게 산정하는 경우 전체주주의 재산권 침해로 보고 미국처럼 주주에 대한 ‘직접’ 의무 부담을 명시해 의무 위반시 배임죄 성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한국 = 소액주주 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
천경훈 서울대 교수는 이날 ‘한국 회사법상 이사의 의무와 주주의 이익보호’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그는 “개정론은 개정의 순기능을, 반대론은 역기능을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기업경영의 재량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주주이익을 보호하고 투자자 신뢰를 회복해 자본시장 저평가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사는 누구의 수임인인가?’(답=회사), ‘수임인으로서 의무의 내용은 무엇인가?’(회사의 이익증진, 회사의 수임인으로서 직무수행상 총주주의 이익 보호)라는 두 질문을 구분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주주이익=회사이익’이지만 인수합병, 주식교환 등 조직재편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이사의 직무수행이 회사의 손익을 거치지 않고 주주에게 직접 손익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행법 하에서도 이사의 주주이익 보호의무가 인정되지만 현행법이 미비하다는 논변이 널리 퍼져 있다”며 “주요 사건들이 엄격한 법적요건을 따지는 형사 사건으로 다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이사의 주주이익 보호의무가 없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데, 일부 판례가 그런 인식의 여지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에 제시된 개정안들이 상법의 다른 조항과 조화되지 않는 등 체계상 문제가 많다고 보면서도, 여러 규범상 이유로 일정부분 변화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재판규범의 측면에서 법원이 기업 구조재편 때 주주이익 침해 여부에 대해 이사들이 검토했는지 여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자본시장법 규정 준수 여부 등 형식적인 부분만 검토하는 검토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여러 민사 가처분 사건에서도 이사들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가라는 문제는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합병비율이 자본시장법에 의해 법으로 정하고 있더라도 합병을 할지 여부, 시기에 대한 문제, +-10% 선에서 할증할인 협상을 할지 등은 검토해야 할텐데 법원결정문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며 “검토 과정에서 이같은 주주 이익 검토가 누락됐다면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해서도 보호를 못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행위규범에서도, 시장의 인식에서도 ‘한국 상법은 주주이익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확인적, 선언적으로 주주이익 보호를 명시하는 입법은 의미가 있다’며 대안적 입법안을 제시했다. 이사가 회사의 수임인으로서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명기하면서도 다음 항목으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시하는 안이다.

주제발표에 이어서 종합토론에는 김우찬 고려대 교수,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변호사, 권재열 경희대 교수, 이중기 홍익대 교수, 윤승영 한국외대 교수, 안태준 한양대 교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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