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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기자 수첩] 못한다고 세상이 끝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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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년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걸 못해낸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존 리 우주항공청(이하 우주청)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은 한국이 제4라그랑주점(L4)에 목표기간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묻자 이같이 답했다.

우주청 개청 100일 기념 간담회 자리였다. 우주청 임원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잘 담기지 않는다며 답변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달라는 요청이 있은 뒤다. 간담회장을 빼곡히 채운 기자 앞에 홀로 선 리 본부장의 발언은 덕분에 더 극적으로 들렸다.

라그랑주점은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뤄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지점이다. L4는 모든 라그랑주점 중 가장 안정적인 '완전 평형점'이다. 지금까지 L4에 탐사선을 보낸 국가는 없다. 리 본부장은 임무본부장으로 부임하기 전 이미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우주청의 과제로 L4 탐사를 제안했다. 그로부터 1년 뒤 L4에 세계 최초로 우주관측소를 구축한다는 계획은 실제로 우주청의 첫 과학탐사 임무가 됐다.

간담회에선 목표시기인 2035년까지 10년가량 남은 상황에서 내년도 우주청 예산에 반영조차 되지 않은 L4 탐사를 과연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이때 리 본부장의 대답이 바로 "2035년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다"였다.

그는 "예산이 확보되면 탐사도 빨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산이 탐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라고 했다. 윤영빈 우주청장의 생각도 비슷해 보였다. L4 탐사에 과연 경제성이 있겠냐는 질문에 윤 청장은 "과학탐사는 경제성과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이어 "하지만 달 탐사도 이제는 자원채굴로 주목받게 됐다"고 했다. 정책가가 아닌 과학자다운 대답이었다.

과학자가 연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호기심'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청이 야심찬 첫 계획을 내놓은 지금은 어쩌면 현실성 있는 계획을 내놓으라는 주문보다 이들의 호기심을 믿고 응원할 때가 아닐까.

갓 100일을 넘긴 한국 첫 우주기관이 무탈히 성장해 세계 최초로 우주의 한 지점에 다다를 수 있도록. 과학자의 호기심이 국회의 엄중한 예산 심의를 뚫을 강력한 무기가 되지 못할지라도, 응원한다.

머니투데이

박건희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 /사진=박건희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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