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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8개월간 세계일보 취재진이 만난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 가족, 전문가(법조계·의료계·국회 등) 84명 중 25명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조현병 아들을 둔 한 아버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회가, 이웃이 손을 내밀고 조금만 이해해주시면 아이들의 인생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세요.” 조현병 딸을 둔 또 다른 어머니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함께 살면 알 수 있어요. 두려움은 몰라서 생겨요. 같이 삽시다.”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는 듯, 알지 못합니다. 자주 접하긴 하지만, 대부분 ‘범죄사건 가해자가 알고 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식의 보도를 통해서였습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정신장애 범죄자’는 전체 범죄의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 1%가 정신질환자 전체를 과대대표했고,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만 우리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집계한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진단 혹은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은 63만6532명에 달합니다. 국내 인구(5132만5329명)의 1.2%로, 100명 중 1명꼴이죠. 우리가 거니는 길에, 식당과 카페에, 어쩌면 매일 향하는 일터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함께 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건, 이들이 너무나도 평범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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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눈길 한 번 주세요.”
먼저 정신질환 당사자의 가족들이 전해온 편지를 전합니다. 이들은 입·퇴원, 복약관리 등 ‘보호자의 굴레’ 속에서 노심초사 환자 곁을 맴돌며 “일과 삶은 사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대화의 마무리는 “그래도 자식이 치료를 받아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울먹였습니다.
“우연찮게 아들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에 무언가 걸려서 질식하기 직전이라고 길가던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근처 응급실에 가서 도와달라고 사정도 하고 119를 부르기도…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청해봤으나 어느 한 곳에서도 따뜻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상한 듯 피해가고 병원에서는 쫓겨났습니다. 그런데도 제일 믿어야 되는 가족에게는 도와달라고 하진 않았다는 게 참 속상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조현병, 망상, 환청 등등. 여러 가지 증상들이 본인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들도 체념한 듯 지낸 건 아닌지 싶습니다.” (박미정·52, 가명)
“착하고 선한 아이들입니다. 오히려 거친 사회로부터 상처받아 어려움에 처한 아이입니다. 이제는 사회가, 이웃이 손을 내밀고, 조금만 이해해주면 아이들의 인생을 크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세요.” (오강석·60대, 가명)
“정신질환으로 아픈 아들을 보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회적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조금의 배려만 있어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어요. 국가의 도움 부탁드려요.” (유숙희·61, 가명)
“마음이 힘들 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지역사회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료지원쉼터, 동료지원카페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노은영·64)
“함께 살면 알 수 있어요. 두려움은 몰라서 생겨요. 같이 삽시다.” (김은순·50대,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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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현병입니다’라고 당당히 밝히는 사회로”
다음은 법조계·의료계·국회·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 당사자의 회복과 치료를 지원하고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중증 정신질환은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침묵과 오해’보다는 ‘관심과 눈길’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조현병을 가진 자식을 둔 부모가, '내 아이는 조현병입니다' 라고 당당히 밝히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 그 요청에 귀 기울이고, 함께 걱정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는 그 미친 사람이 바로, 내 아이일 수도 있다.”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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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오해로 과장된 질환, 침묵보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조현병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정신장애인과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전용현 변호사)
“조현병 치료를 위해서라도 지역사회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치료를 위한 강제 입원은 불가피할 때 최소한으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기에 진단받아 치료받고, 치료를 잘 유지하면 정신질환 당사자는 회복 가능하고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부당하게 가족에게만 모든 걸 떠넘기지 말고, 다른 국가들처럼 정신건강복지법의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길 바랍니다. 그게 정신건강 정책 개혁의 핵심입니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정신질환 당사자의 삶에 궁금증을 가져주세요.” (강등현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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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사회적 위기 당사자와 가족에게 다가가서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김성수 정신과 전문의)
“조현병은 병원, 정신건강복지센터, 마인드링크를 잘 이용해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김성완(전남의대 정신과 교수)
“최고의 치료 : 가정과 일터에서 자신의 인생 살아가기” (이영렬 국립법무병원장)
“정신질환의 끝에서 절망과 범죄가 아닌 희망과 치료의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차승민 전 국립법무병원 전문의)
“모두의 노력을 통해, 정신장애 당사자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김도희·정신건강복지센터장, 가명)
“강제치료 격리대상 아닌 시민으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삽시다!” (이은미 서울 관악동료지원쉼터 팀장)
“정신적 고생이 있더라고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정유석 서울 관악동료지원쉼터 부센터장)
“정신질환자와 정신장애인은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입니다. 지역과 직장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치유와 회복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중증 정신질환자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국회도 노력하겠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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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론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당신께 남긴 편지입니다. 우린 이웃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으셨길 바라봅니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 당사자들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유선·32)
“정신장애인 당사자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정하·53)
“오늘날의 정신장애인들이 이제는 병원이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 내에서 안전한 주거공간 서비스를 제공받고, 지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건강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슴 벅차도록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장애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그런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해봅니다.” (이도현·40)
“당사자들도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당사자와 비당사자 서로 구분과 편견 없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우연·33, 가명)
“정신질환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요!” (전현진·41)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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