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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 (수)

파병 북한군, 능소능대와 허허실실을 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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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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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는 북한군은 적을 기만하는 모든 군사 전략과 전술을 구현한다. 서방과 한국 언론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그렇다.



서방과 한국 언론들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북한군을 그려보자. 이들은 10월 초 북한 원산이나 청진에서 러시아 군함을 타고 연해주 지역으로 갔다. 육로나 기차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서방의 위성에 탐지될 수 있는 러시아 군함을 이용한 것은 보란 듯이 파병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연해주의 한 러시아군 훈련장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들며 러시아군 보급품을 수령하고 훈련을 받는 듯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이미 북한군이 전사하고, 탈영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해주에서 쿠르스크까지 육로로 갔다고 한다. 이번에는 서방의 위성에 탐지되지 않으려고 육로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연해주에서 쿠르스크까지 육로로 가면 며칠은 걸린다. 그러고는 막바로 전투에 투입됐다. 강철 체력의 군인이 아닐 수 없다.



전선 투입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하고, 철저히 숨기기도 한다. 북한 인공기에 북한군 제복을 입고 전투에 나섰다. 우크라이나군에게 펄럭이는 인공기가 포착되고, 탈취당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려고 러시아 내의 몽골계 부랴트 주민으로 위장하는 ‘부랴트 특수대대’로 편제되기도 했다.



총알받이로 내보내려는 20살 전후의 신병이지만, 온갖 특수훈련으로 단련돼, 교착된 전선을 뚫을 수 없는 막강 전력이기도 하다고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밝힌다. 40명이 전투에 투입돼 1명만이 생존하고, 전선에 떨어뜨려진 이들은 후방으로 도망가는 러시아 장갑차를 따라서 도망가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군 다수는 여전히 병영에서 김일성·김정은 초상을 앞에 두고 정신교육을 받는 여유도 보이고, 유창한 중국어도 구사하는 엘리트 인력들이다.



차제에 북-러 친선도 돈독히 한다. 전선에서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러시아 군인들은 파병된 북한군과 소통해 친교하려고, 서울 말씨의 한글교본을 열심히 공부한다. 북한 병사들은 ‘누렁이 개고기’라는 상표의 개고기 통조림과 소고기가 듬뿍 든 컵라면을 먹으며 케이(K) 푸드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기도 하다.



가장 두렵고, 위협적인 것은 전투 참여를 종잡을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5일이 되어서야 한국방송(KBS)을 상대로 북한군과의 “작은 관여”가 있었다고 말했다. ‘관여’를 “전면적 교전이 아닌 소규모 접촉에 불과”하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39명의 전우가 전사하고, 자신은 시체에 숨어서 살아남았다는 북한 병사의 절규를 담은 동영상이 보도되고, 전사한 북한군 병사와 그의 군인 신분증을 보여주는 사진은 북한군과의 그런 ‘관여’의 결과물인가 보다. 물론,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4일 북한군의 전투 참여 “관련 보도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보도 내용이 맞다고 확인해줄 순 없다”고 말했다.



이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는 북한군에 대한 소식을 전한 서방과 한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 약간의 해설을 추가한 것이다.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우크라이나와 한국 익명 당국자나 ‘전문가’ 전언이나 동영상, 사진들을 서방과 한국 언론들이 그대로 ‘사실 보도’했다. 그러면, 이 내용은 권위 있는 언론이 전한 사실이 된다. 예를 들어, 리투아니아에 있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반러시아 단체가 처음 주장한 ‘전투 투입된 북한군 40명 중 1명만 생존’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다시 보도되면서, 이 방송이 취재한 사실로 한국 언론에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쪽에서 북한군 파병과 참전을 앞장서 퍼뜨린다. 그 이유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파병된 북한군이 위협이라며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서방이 지원한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영내를 공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서방이 이를 허용하면, 서방의 인력이 우크라이나에 공식적으로 파견돼야 한다. 물론 한국의 무기 지원이나 군사 인력 파견도 재촉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합을 맞춘다. 여당 의원 한기호가 “러시아에 파병된 북괴군 부대를, 우크라이나가 폭격하도록 해, 심리전에 써먹자”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에게 말하고, 급기야 북한군 40명 사망을 한국 당국자가 확인했다는 보도가 4일 나왔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민망했던지, 다음날 “북한군이 전투를 안 했는데 어떻게 사망자가 나오나?”라고 한 정보 관계자가 전했다 한다.



북한군 파병 소식은 우크라이나에서 발화되고, 한국이 증폭시킨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북한의 선전선동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군을 저렇게 능소능대, 허허실실을 구현하며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위협적인 군대로, 결과적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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