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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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국정 지지도가 20%를 밑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지난 한달간 불거진 위기 담론의 중심에 삼성전자가 섰다. 지난달 초 ‘어닝 쇼크’라는 평가를 받은 3분기(7~9월) 잠정 실적 공시와 뒤이어 나온 전영현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가 계기였다. 바닥 모를 주가 하락으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건 수개월 전부터였다.
‘삼성전자 위기’란 표현은 참으로 생소하다. 고인이 된 이건희 회장(2020년 작고)이 생전에 자주 위기론을 꺼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좀 더 나아가기 위한 조직 다잡기 차원이거나 여러 불미스러운 스캔들에서 벗어나려는 여론 전환용 성격이 짙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삼성전자 위기론은 지난 30여년 새 이번이 처음이다.
담론은 그 속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고 넓어진다. 삼성전자 위기론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메모리 반도체의 한 부분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납품 여부나 파운드리 강자 티에스엠시(TSMC)의 지배력 확대, 반도체 굴기를 수년 전 선언한 뒤 놀라운 속도의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도전 등이 주로 거론됐다. 이후 위기 담론은 해이해진 조직 문화, 재무·법무 중심의 사내 권력 지형, 퇴임한 특정 고위 경영자의 판단 착오, 총수 리더십과 사법 리스크 등으로 나아갔다. 최근에는 ‘52시간 근무제’도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핵심 원인으로 등장한다. 위기 담론에 참전한 이들도 다양하다. 반도체 분야 학계 인사나 전직 경영진, 자본시장 참가자는 물론 익명의 엔지니어들이 레거시·뉴 미디어 할 것 없이 매체에 등장했다. 상업적 이해나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깊이 투영된 듯한 분석과 주장도 더러 눈에 띄지만, 담론 시장의 속성이 애초 그러하니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론 홍수 속에 담긴 공통 정서와 전제는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삼성전자가 만년 1등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 공감대가 의아했다. 판이 바뀐 상황에서도 1등을 해야 한다는 위기론자의 멘털리티는 ‘1등 강박’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과거의 1등이 비단 삼성전자 힘으로만 이룩됐다는 식의 위기론 전제는 당혹스러웠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에서 우뚝 서게 된 건 임직원의 땀과 눈물의 힘이 크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와 뒤이은 공세적 산업 정책 개입과 같은 아이티(IT) 강국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그에 따른 삼성전자의 반사 수혜라는 국제질서 변화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때 ‘삼성 공화국’이란 조어가 수시로 쓰일 정도로 정치·행정·사법·언론 등의 노골적인 자원 몰아주기도 ‘삼성전자 신화’의 불편하지만 실재하는 배경이다. 심지어 직업병으로 여러명의 직원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취약한 노동 환경과 무노조 방침 등 노동권 경시도 ‘삼성전자 경쟁력’으로 이해된 게 사실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나는 현재 삼성전자를 둘러싼 현상을 설명할 때 ‘위기’보다 ‘제 위치 찾아가기’란 표현이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미-중 갈등 심화와 보호무역주의 발호로 요약되는 현재의 국제질서 변화, 후발 주자의 빠른 성장, 높아진 노동 의식, 권위에 대한 순응보다 자율을 선호하는 노동 문화, 한층 목소리가 커진 자본시장 등은 과거의 1등 삼성전자가 부대낀 상황과 다르다. 이런 여건은 삼성전자가 바꿀 수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되는 것들이다. 특히 변화한 환경 일부는 사회·경제 발전의 산물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기후위기와 저출생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오늘날, 과거처럼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라고 채찍질할 수도, 더 많은 전기와 더 많은 물을 반도체 공장에 몰아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정치권이 투자가 부진하고 일자리가 위축될 때마다 에스오에스(SOS)를 치고 권부 출신 낙하산을 받아달라고 암암리에 삼성에 요구하는 것도 이젠 자제해야 한다. 삼성전자에 ‘국가 대표 기업’이란 권위를 부여하며 그에 상응하는 짐을 요구할 일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상법과 노동법, 자본시장법 등 한국 사회가 합의한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주주와 임직원의 이해를 도모하고 번 만큼 세금 내고, 공동체의 사랑을 받으려 한다는 의미에서 ‘정상 기업’으로 거듭날 시간과 기회를 우리 사회는 줘야 한다. 위기론 과잉은 삼성전자를 다시 빛난 만큼 그림자도 짙었던 그때 그 모습으로 몰아갈 수 있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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