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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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일 검은 옷을 입은 여성 수만 명이 폴란드 각지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집권 여당이 낙태를 전면 금지하려고 하자 여성들이 직장, 학교, 집안의 모든 일을 내려놓는 ‘총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새 법이 통과되면 임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도 의사가 아무 조치를 할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 여성들이 모든 일을 거부하고 시위에 돌입하자 정부와 의회가 한 발 물러섰다.
▶여성들이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것은 유래 깊은 일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는 남편들이 전쟁을 멈추게 만들려고 아테네 여성 주인공이 스파르타 여성들과 연합해 ‘섹스 파업’을 하는 내용의 희극을 썼다. 이를 본떠 2006년 콜롬비아에서는 만연한 폭력을 줄이자며 갱단 단원을 남편이나 남자친구로 둔 여성들이 성관계를 거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필리핀, 벨기에 등에서도 정치적 목적의 성관계 거부 운동이 있었다.
▶여성 운동가가 남성 위주의 사회에 종속되지 않겠다며 결혼과 출산을 꺼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미국 여성계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90)은 1987년 결혼 제도가 불평등하다며 “결혼을 하면 당신(여성)은 반쪽짜리 하찮은 사람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66세가 되던 2000년, 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베일과 뒤늦은 결혼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변한 것이 아니라 결혼 제도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변했다”고 했다.
▶2017~2018년쯤 한국 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 ‘4B’ 운동이 시작됐다. 비(非)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뜻한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상습적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폭로돼 ‘미투’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한국에서는 웹하드 업체들이 피해자 고통은 외면한 채 불법 촬영 음란물을 조직적으로 유통시켜 돈을 벌었다는 ‘웹하드 카르텔’ 사건이 터졌다. 남성과의 만남 자체가 불안하다는 여성이 늘면서 ‘비혼’ ‘비출산’에 연애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추가됐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 후, 미국 진보 여성들 사이에서 한국의 ‘4B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이 보도했다. 구글에서 ‘4B 운동’의 검색량이 급증했고 ‘4B’ 해시태그를 단 소셜 미디어 콘텐츠도 인기라고 한다. CNN은 ‘비혼(bihon), ‘비섹스(bisekseu)’처럼 한국어를 그대로 옮겨 4B를 설명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K페미니즘까지 수출되는 모양이다.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모르겠다.
[김진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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