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분간 쏟아낸 29곡... “그의 목소리는 짱짱했다”
23일~24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20집 발매 기념 공연을 시작한 조용필. 그는 "20년 전만 해도 40집까지 할 줄 알았는데, 정규 앨범은 이번이 마지막"이라 했다. 대신 "개별 신곡은 낼 거다. 전 평생 노래한 사람이라 노래 못 하면 병날 것 같다. 은퇴 못 할 것 같다"며 최신 곡 '그래도 돼'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YPC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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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조용필이 11년 만에 20집 앨범을 내놓은 뒤 반응이 엇갈렸다. 70대에도 세련된 팝록 선율의 7곡으로 19집 ‘헬로’와 노래 ‘바운스’의 깜짝 도전을 이었다는 찬사가 있었지만, “성인가요 색채가 짙던 옛 히트곡의 영광을 재현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음원 성적으로만 보자면 전작(前作)에 비해 반향이 줄었기에, 보장된 성공 대신 실험만 지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였다.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8500석 규모로 열린 조용필의 20집 발매 기념 콘서트는 이런 걱정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무대였다.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 10분간 쏟아진 29곡의 면면이 “조용필 음악의 근간인 록은 세월의 흐름과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신보 기념 공연임에도, 신곡 선곡은 ‘그래도 돼’와 ‘찰나’ 두 곡뿐. 대신 조용필은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직접 기타를 잡고 ‘판도라의 상자’ 등 기존 발표곡들을 신곡에 준하는전혀 다른 모습으로 선보였다. 5분 넘는 대곡 형식의 새로운 편곡이 쏟아졌고, 미8군 록 기타리스트였던 그의 출발점을 상기시켰다.
23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20집 발매기념 전국 공연을 시작한 조용필. 그는 '남겨진 자의 고독'과 '기다리는 아픔'을 부를 때 "내 노래는 평소 여성 작사가들이 여성 입장에서 쓴 노래가 많아 남성들이 부르기엔 애매한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데 이 노래는 남녀 모두 공감하더라. (노래 주제인) 사랑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다"고 했다. /YPC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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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조용필이 2006년 이후 18년 만에 라이브로 선보인 첫 곡 ‘아시아의 불꽃’이었다. 가로 70m, 세로 16m의 대형 전광판의 넘실대는 불꽃을 배경으로 ‘조용필’의 이응(ㅇ) 자를 상징한 거대 조명 앞에서 전위적인 록 사운드가 펼쳐졌다. 1984년 한·중·일 대표 음악인의 합동 공연 ‘팍스 뮤지카’에 서며 쓴 자작곡. 이 노래가 실린 7집은 그의 히트곡에 록 비중을 대폭 늘린 기점으로도 꼽힌다.
중년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던 ‘남겨진 자의 고독’, 1980년 TBC 드라마 ‘축복’의 주제가 ‘촛불’ 등 조용필 자작곡 중에서도 그간 라이브에서 잘 들려주지 않았던 노래가 이어졌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노래 후 “정말 오랜만에 불렀죠? (내가 하도 안 부르니) 다들 다른 사람 노랜 줄 안다”고 했다. 그만큼 첫날에는 일부 곡에서 기존 공연에 비해 가사 실수를 보였다. 조용필은 머쓱한 표정으로 “곡을 많이 하다 보면 가사를 잊을 수도 있다. ‘쏘리쏘리’했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조용필의 목은 음이탈 없이 최상의 상태를 보여줬다. 고난도 창법으로 통하는 ‘단발머리’의 고음 가성을 깔끔한 미성으로 뽑아냈다. 첫 곡부터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 등을 내리 20분간 불렀을 땐 객석에서 “미쳤다”는 소리가 터졌다. 음압을 꾹꾹 눌러 담다 못 해 까랑까랑하게 들리는 특유의 절창이 여전했다. 긴 호흡의 발성을 폭발적으로 이어간 ‘친구여’는 노래 직전 “내 나이 때 (이렇게 노래) 할 수 있어요? 까불지 마세요”라며 던진 그의 농담을 전혀 농담 같지 않게 만들었다. ‘청춘시대(1987)’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젊게 들리는 노래도 있었다. 최근 청춘들 사이 인기를 누리는 얼터너티브 록을 이미 1980년대에 실험한 노래다.
조용필은 오는 23·24일, 30·31일 나흘간 서울 공연 후 12월 21일 대구 엑스코, 28일 부산 벡스코 무대에 선다. 대구 공연 기준 예매 연령대는 20대(19.5%), 30대(28.7%), 40대(12.8%), 50대(29.9%)로 고른 편. 이 폭넓은 분포도가 70대의 현역 가왕이 56년간 지속해온 음악적 실험으로 거둔 진정한 성과일 것이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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