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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만물상] 붕세권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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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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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 쌍문동 서민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붕어빵이 자주 등장한다. 동네 친구이자 바둑 천재인 택이의 대국이 다가오자, 주인공 덕선은 종이봉투에 붕어빵을 담아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야, 붕어빵. 잘 다녀와.” 덕선이 건넨 붕어빵은 훗날 남편이 되는 택이와 나누는 사랑을 상징한다.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우는 선우 엄마도, 역시 아내와 사별한 고향 선배 택이 아빠가 입원하자 붕어빵을 사 들고 병원을 찾아간다. 이후 택이 아빠가 “날도 추운데 우리 같이 살자”고 청혼해 두 사람은 재혼한다.

▶바삭한 껍질 속에 달콤한 팥소가 들어있는 붕어빵은 이처럼 서민의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온 간식이다. 그 기원은 일본의 ‘다이야키(鯛焼き)’인데, 우리 말로 ‘도미빵’이다. 일본에는 에도 시대부터 둥근 밀가루 반죽 속에 팥을 넣은 ‘이마가와야키’라는 간식이 있었다. 1909년 이것을 팔던 고베 세이지로란 사람이 장사가 잘 안 되자, 물고기 모양 틀을 개발해 다이야키가 등장했다.

▶일본에서 도미는 기쁜 일이 있을 때 먹는 고급 생선이자 행운의 상징이다. 복(福)의 신 ‘에비스’도 옆구리에 도미를 끼고 있다. ‘다이야키’는 서민들은 이런 도미를 좀처럼 먹지 못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것인데, 곧바로 대히트했다. 지금도 도쿄 명소 아자부주반에 가면 고베가 만들었던 원조 다이야키를 맛볼 수 있다.

▶다이야키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그 변형인 붕어빵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밀가루를 대량 원조한 1960년대로 추정된다. 동의보감에 “여러 물고기 중 가장 먹을 만하다”고 적혀 있을 만큼 한국인에게 친숙한 물고기여서 ‘붕어빵’이 됐을 것이다. 한때는 겨울이면 어디에나 붕어빵 노점이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밀가루, 팥, 식용유 원가가 상승하면서 가격이 오르자 채산을 못 맞춘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래도 추운 날 붕어빵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가 보다. ‘역세권(驛勢圈)’을 흉내 낸 ‘붕세권’이란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근처에 붕어빵 맛집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한 중고 거래 앱이 26일 ‘붕어빵 지도’를 공개해 화제다. 주변의 붕어빵 가게와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2020년부터 호떡, 군고구마 등 ‘겨울 간식 지도’를 제공했는데, 가장 많이 등록·검색되는 메뉴가 붕어빵이었다고 한다. 슈크림, 앙버터 등을 넣은 신종 붕어빵도 등장했다. 붕어빵 정도는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진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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