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품고 전사한 美 6·25 참전 용사
슬레이튼, 75년 만에 가족들 품으로
북한의 침공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고 두 달여가 지난 1950년 9월경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이 주축을 이룬 유엔군 장병들이 군용 차량과 함께 이동하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 당시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미군 병사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앨라배마 출신의 열여덟 살 웨이먼 슬레이튼 상병도 그 중 한 명이다. /미 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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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일 새벽,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유엔군 주둔지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북한군이 기습한 것이다. 영산면은 6·25전쟁 발발 초기 거침없이 밀고 내려온 북한군 공세에 맞서 유엔군과 국군이 피로 지켜낸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였다. 총탄과 수류탄 세례 속에서 참호를 사수하던 미 육군 제2 보병사단 9연대 1대대 B중대 소속 열여덟 살 소년 웨이먼 슬레이턴 상병은 급히 펜을 꺼내 종이에 편지를 썼다.
“지금 참호에서 이 몇 줄을 적어 보내요. 곁에 있던 전우들은 이미 죽었고, 저도 머지않아 죽을 것 같아요. 부디 누군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럼 영원히 안녕(Goodbye forever).”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군복 주머니에 넣은 슬레이턴은 그날 밤 적군의 총탄 세례에 스러졌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던 동료 군인들이 편지를 발견해 유품과 함께 고향인 미국 앨라배마주의 소도시 아랍의 부모 집에 보냈다. 그러나 편지의 주인공은 75년 만에야 고향에 돌아가게 됐다.
75년만에 귀향하게 된 6 25 참전용사 웨이먼 슬레이튼 상병. |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영산면 서부 209고지(高地)에서 수습돼 74년째 신원 불상 상태였던 유해가 슬레이턴 상병으로 확인돼 내년 1월 13일 고향 마을에 안장될 예정이라고 26일 발표했다. DPAA의 첨단 감식 기법으로 신원이 확인돼 귀향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유해가 머물던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 내 신원 불상 전사자 묘역의 비석에 새겨진 그의 이름에는 ‘신원이 확인됐다(accounted for)’는 표지가 붙게 됐다. 슬레이턴의 이름은 2022년 7월 워싱턴 DC에서 제막한 6·25 미군·카투사 전사자 추모의 벽에 새겨진 4만3808명에도 포함돼 있다.
인구 8000여 명의 소도시 아랍에서 태어난 슬레이턴은 1950년 1월 입대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포트 잭슨 기지에서 신병 훈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 보름 동안 고향에 머물다 6·25 발발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7일 한국으로 파병돼 낙동강 전선에 배치됐다. 슬레이턴이 전사한 영산면 전투는 미군의 6·25 참전사에서도 비극으로 꼽힌다. 예상치 못한 북한군 기습으로 참호에 있던 병사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군은 해안선을 따라 측면 공격을 시도하리라는 아군의 예측을 깨고 낙동강을 가로질러 내륙으로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그러나 보름 동안 이어진 치열한 교전을 통해 아군은 전세를 역전했고 결국 적을 격퇴하며 승리했다. 슬레이턴을 포함해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진지를 사수한 장병들의 희생 대가이기도 했다. 이 전투에서 전사한 유엔군 1100여 명 중 상당수가 미군이며 전투 첫날 숨졌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전사자들의 시신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그를 포함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미군들의 유해가 수습돼 하와이 국립묘지의 신원 미확인 전사자 묘역에 안장됐다. 슬레이턴은 1953년 12월 31일에 공식적으로 전사자가 됐다. 그러나 편지와 유품만 가족에게 전해졌을 뿐 유해는 찾을 길이 없었다.
미국 정부는 1·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격전지에서 수습한 신원 미확인 전사자를 임시 안장 방식으로 모셔두었다가 가족에게 넘겨 귀향·안장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이 임무를 전담하는 기관이 DPAA다. 21세기 이후 최첨단 감식 기법이 잇따라 도입됐다. 이 덕분에 오래전에 수습된 세계대전과 6·25 전사자들의 유해도 정밀히 분석한 뒤 후손과 DNA(유전자 정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신원 확인에 성공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DPAA는 2021년 5월 하와이에 임시 안장된 신원 미확인 6·25 전사자를 귀향시키기 위한 세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X-256’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해 한 구도 수습됐고, 정밀 감식을 통해 앨라배마 출신의 열여덟 살 소년 웨이먼 슬레이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DPAA 조사관들은 이번 조사를 위해 유해를 방사선으로 촬영해 흉곽을 디지털로 재현하고,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실종된 미 장병들의 유족과 일일이 비교하는 긴 작업을 거쳤다. 슬레이턴의 고향 앨라배마의 신문과 방송들은 DPAA의 신원 확인과 귀향 일정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DPAA는 지난 9월까지 6·25 전사자 약 70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미군 전사자는 74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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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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