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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칩스법 최대지원도 했는데…'구세주' 쫓아낸 인텔, 어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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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스법 최대 수혜기업 인텔, 반도체 재건 추진 겔싱어 축출…
천문학적 투자 비용에 제품 개발은 더뎌, 기업 매각 수순?

머니투데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현지시각)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해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반도체법에 따라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 원) 규모의 대출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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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반도체를 재건할 '구세주'였던 팻 겔싱어 CEO(최고경영자)가 이사회에서 축출됐다. 겔싱어가 물러나면서 잃어버린 반도체 주도권을 찾겠다던 인텔의 야심도 흔들린다. 새 선장을 만나더라도 적절한 제조 규모를 달성하고 고객사를 확보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2022년 7월 제정한 '칩스법'(반도체 지원법)도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인텔은 겔싱어가 1일자로 물러났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사회에서 강제 해임된 것이다. 지난주 시장점유율 회복 및 엔비디아와 격차 감소 등을 논의하다 겔싱어와 이사회 간 충돌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겔싱어는 은퇴하거나 해임되는 선택권이 주어졌으나 결국 회사를 떠나기로 스스로 정했다. 당분간 회사는 데이비드 진스너 CFO(최고재무책임자)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부사장이 임시 공동 CEO를 맡는다.

10대 시절 인텔에서 일하기 시작해 VM(Virtual Machine)웨어 CEO를 거쳐 2021년 인텔 CEO로 복귀한 겔싱어는 대만에 뺏긴 미국의 반도체 제조 선두 자리를 되찾겠단 청사진을 내놨다. 바이든 행정부의 칩스법도 겔싱어의 인텔에 날개를 달아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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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6월 4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링 포럼에서 강연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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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20일(현지시각) 애리조나주 챈들러의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방문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반도체법에 따라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 원) 규모의 대출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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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인용 컴퓨터 및 서버 프로세서에 주력해온 인텔이 고객의 칩을 대신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TSMC가 강력한 1인자 자리를 굳힌 이 시장은 막대한 투자 비용이 들었다. 오하이오 생산 단지의 경우 칩스법 보조금을 통해 상당 비용을 충당하게 됐지만, 독일 공장은 결국 투자 계획을 보류했다.

인텔에게 가장 큰 시련은 파운드리에 뛰어든 이후 발생한 인공지능(AI)발 업계 지각변동이다.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한 상황에서 벌어진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울프리서치의 크리스 카소는 "겔싱어는 인텔의 프로세스 로드맵을 발전시키는 데 전반적으로 성공했다"면서도 "인텔은 AI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기 때문에 최첨단 제조를 스스로 추진할 규모가 안 된다"고 밝혔다.

과도한 투자로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인텔은 지난 8월 32년간 지속해온 배당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또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11만명의 직원 중 15% 이상을 감원하기로 했다. 지난 30여년간 현금 곳간이 마르지 않던 인텔은 이제 500억달러가 넘는 부채를 지고 있고 투자 계획을 이행을 위해 외부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칩스법을 통한 보조금은 인텔 전체 자본지출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인텔의 혼란으로 미국 반도체 산업을 재건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야망도 빛이 바랬다. 겔싱어 CEO는 칩스법의 가장 큰 지지자이자 수혜자였다. 바이든 정부는 얼마전 인텔에 약 79억달러(약 11조원)의 연방 보조금을 제공하는 협정에 최종 서명했는데 이는 칩스법하에서 최대 규모의 보조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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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선장을 맡든 새 CEO는 회사 지분 매각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율주행칩 회사인 모빌아이 등 인텔 계열 회사의 지분 매각이 거론된다. 칩스법의 보조금 지급 조건상 제조 부문에 대한 지배적 지분은 유지해야 한다. 투자매체 배런스는 "아예 회사 전체를 매각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인텔 주식은 장부가치의 1.5배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그러나 인텔의 시장가치는 여전히 약 1090억달러에 달해 몸집이 크다. 정치적인 계산도 필요하다. 어쨌든 인텔은 미국에서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제조업체다. 칩스법의 보조금을 가장 많이(전체 보조금의 24%) 받은 이유다.

겔싱어 CEO는 성명에서 "오늘은 달콤하고 씁쓸한 날이다. 이 회사는 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제 삶이었다"며 "현재 시장 역학에 맞춰 인텔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도전적인 한 해였다"고 밝혔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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