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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윤휘종의 잠시쉼표] 비상계엄이 삼일 천하도 아니고 '세시간 천하'로 끝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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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에이, 설마…. 가짜뉴스 아냐"로 시작했다가 "에휴, 나라 꼴이…. 애꿎은 군인들만 불쌍하다" "나라 망신살이 뻗쳤다"로 끝난 3일 밤의 '비상계엄 소동'은 사실상 세 시간만에 끝이 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6시간 여 만에 이를 해제했지만, 이미 그 전인 4일 자정무렵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가 넘는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긴급 소집돼 전원 찬성으로 계엄 무효를 선언했기 때문에 삼일 천하도 아니고 세시간 천하가 돼 버렸다.

온 국민과 전 세계를 경악케 만들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비상계엄 선언이 사실상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명분'이 부족했다는 게 가장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24분께 긴급 국민담화를 통해 정부관료 탄핵, 정부 예산안 삭감 등을 비상계엄 선포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국회의 정쟁이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규정하면서 국회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종북세력, 안보위협'이라는 등식은 쉽게 수긍할 수 없다. 국회 예산안은 매년 여야가 갈등을 겪어왔던 문제였고, 국무위원이나 검사들에 대한 탄핵도 여야의 정치 이슈다.

더군다나, 야당이 삭감한 예산은 당초 정부예산안 677.4조원 규모에서 4.1조원 수준이었다. 전체 예산의 0.6%다. 이 4.1조원에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내용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비상계엄의 사유로 든 건 너무 나간 것이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동조세력도 없었다. 심지어 여당의 수장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마저 비상계엄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을 정도다. 군과 경찰은 비상계엄사태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되는 자원이지만, 이들도 진정 국가가 비상사태이고 대통령의 명을 마음으로부터 따라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예전과 확 달라진 시민의식도 비상계엄을 무력화시킨 커다란 동력이다. 지금은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당시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경험을 한 세대이고, MZ세대들은 소통 없이 누군가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에 따를 세대들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정보기술(IT)과 미디어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예전엔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군대가 출동해 국회와 신문·방송사를 폐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수 만 군데에서 중계되는 시대다. 국내 포털을 장악하더라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유튜브나 다른 SNS 등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더군다나 지금 언론사는 2만여 군데에 이른다. 예전처럼 신문사 몇 군데와 방송사를 장악한다고 국민의 귀와 입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비상계엄 선언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후폭풍은 그냥 넘길 해프닝 수준이 아니다. 이미 국격은 땅에 떨어졌고, 그 동안 힘들게 국민과 기업들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이란 브랜드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상식에서 벗어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상계엄 선언에 대해 관련자들은 반드시 그에 걸맞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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