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이란 핵카드 고심…러, 지중해 진출로 봉쇄 위기
美 ‘위기냐 기회냐’ 관망…튀르키예, 반군 통해 세력확장 눈독
8일(현지시간)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광장에서 시리아 반군이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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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과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등 외세의 개입 속에 난마처럼 얽혀 있던 시리아 내전이 종식 문턱에 다가서면서 관련국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24년간 철권을 휘둘러 온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러시아로 도주했고, 시리아 반군은 수도 다마스쿠스를 접수하고 권력을 이양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중해와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중요성에 더해 중동 내 민족·종파 갈등의 중심지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향후 수립될 시리아 새 정부가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에 따라 주변 열강들은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현 상황으로 가장 난감한 입장에 처한 국가로는 이란이 꼽힌다. 이란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처음 발발했을 때부터 알아사드 정권을 물심양면 지원해 왔다.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을 연결하는 이른바 ‘시아파 초승달’ 연대의 한 축인 동시에, 숙적인 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한 무력 투사에 중요한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란은 작년 10월부터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 관여했다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시리아 상황에 개입할 여력을 상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상황에서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을 중심으로 한 시리아 반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이란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중동 내 반(反)미·반(反)이스라엘 전선의 주요 대리세력 중 하나를 잃게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에 남은 선택지는 곧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협상을 진행하거나, 마지막 자위 수단인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이란이 60% 농축우라늄 생산량을 “7배, 8배, 어쩌면 그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7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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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함께 알아사드 정권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로 역할을 해 왔던 러시아 역시 시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국가로 거론된다.
러시아 해군기지가 있는 시리아 타르투스는 러시아군이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항구다.
미국 싱크탱크 CSIS의 시리아 전문가 나타샤 홀은 “러시아에 있어서 시리아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있던 이 지역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발사대의 핵심 부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으로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이 당초 예상과 달리 재앙 수준의 장기전으로 흐르면서 러시아 역시 여력이 부족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NYT는 시리아 곳곳의 공군기지에 주둔해 온 러시아군이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시리아인들을 겨냥해 폭격을 감행, 지금까지 최소 수천명을 살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신냉전 시대에 러시아 정부가 시리아에 대한 접근권을 영구적으로 잃을 가능성은 미국에 큰 전략적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시리아 상황에 대해 연설을 하고 있다. [E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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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은 13년 전 ‘아랍의 봄’을 타고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리비아에서 다시 내전이 발발, 불량국가로 전락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역사적 기회의 순간’이라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이것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의 순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세를 주도한 HTS의 전신은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누스라전선(자바트 알누스라)이고, 지도자인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42)도 2013년 미국 정부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알졸라니는 최근 들어 ‘아흐메다 알샤라’라는 본명을 대신 사용하며 실용·온건 지도자를 표방해 왔으나, 서방 언론은 그가 권력을 손에 넣은 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해 왔다.
여러 민족과 종파가 혼재하는 시리아의 상황에 비춰볼 때 이런 결과는 또다른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준동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동부에 900명 규모의 병력을 배치해 놓고 있고, 이라크·요르단 국경과 가까운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온건성향 아랍계와 쿠르드족 민병대에도 장비와 훈련 등을 제공해 왔다.
NYT는 “(새로 들어설) 시리아 정부가 현지 주둔 미군에 어떤 접근법을 취할지 모르지만, 미 정부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세력에 크게 의존한 채 협상을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려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내다봤다.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시리아 반군조직들과 튀르키예 지지자들이 모여 시리아 반군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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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S를 비롯한 친(親)튀르키예 성향 반군조직들의 승리로 시리아 내전이 사실상 마무리되자 튀르키예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튀르키예는 자국이 지원한 반군조직이 승리에 기여하면서 인접국 시리아를 통해 역내 영향력을 확대할 여지가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동의 주도권을 두고 협력·경쟁했던 이란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됐고, 자국에서 수용 중인 수백만명의 시리아 난민을 송환할 계기도 마련했다.
튀르키예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인한 안보불안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를 장악한 쿠르드족 민병대가 자국 내 분리주의 성향 쿠르드족과 손을 잡고 독립을 시도하는 시나리오를 우려해 왔는데, 이번에 승리한 반군조직들은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다.
이는 튀르키예가 테러조직으로 간주하는 시리아 내 쿠르드계 반군이 직·간접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불거진 외교적 갈등을 풀어낼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 장관은 8일 카타르에서 열린 도하 서밋에서 “시리아는 시리아 국민이 자국 미래를 형성할 단계에 도달했다”며 “튀르키예는 시리아 재건,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이웃 국가 및 새 행정부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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