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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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 선임기자
현직 대통령 윤석열이 주도한 ‘12·3 내란’은 여러모로 놀랍다. 군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고, 국회와 언론을 무력화하여 모든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살벌한 꿈을 꾸었다. 지난 4월 총선 결과가 ‘선거 부정’ 때문이라 믿고,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시스템을 열어 내란을 정당화하려던 발상의 황당함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 출판부가 올해의 단어로 무분별한 인터넷 콘텐츠 소비에 따른 ‘뇌썩음’(brain rot)을 골랐다는데,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사례를 찾기가 한동안 어렵겠다.
이 나라 국민의 민주정치 역량은 윤석열 정부가 경제·민생을 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내란은 곧 진압했다. 오랜 세월 피 흘리며 쌓아온 힘이다. 1898년 겨울 종로 거리에 쌀장수, 백정, 기생, 신기료장수 등 수천 수만 백성이 모여 42일간 철야하며 의회 설립을 요구하던 만민공동회의 기록은 지금 봐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것이 1천명 가까운 희생을 무릅쓰고 온 나라에 독립을 선포한 1919년 3·1운동의 원동력이었고,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어냈다. 광복 이후에는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며 독재자들에게 빼앗긴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되찾아왔다. 권력이 빗나간 길을 걸을 때마다 거리를 뒤덮은 촛불이 바로잡았다.
이번 내란도 헌법이 정한 길을 따라 정리될 것이다. 국회가 윤석열을 탄핵하고, 특별검사가 체포·구금해 기소하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주권자 국민이 곧 이긴다.
그런데, 그것으로 개운해지지 않는, 사태의 심각한 측면이 있다. 이번 내란을 두고 많은 이들이 1979년 전두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쿠데타를 이야기한다. 대규모 살상을 감행할 수 있는 무력을 동원한 점이 같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뽑힌 대통령이 ‘종신왕’이 되려 한 친위쿠데타라는 점이 가슴을 더 짓누른다. 이승만의 1952년 부산정치파동, 박정희의 1972년 10월 유신이 비슷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국민 주권’을 또다시 유린당할 뻔했다.
나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월, ‘왕을 뽑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이 지면에 쓴 일이 있다. “우리는 명칭은 대통령이지만 실은 ‘왕을 선거로 뽑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5년마다 (정치적으로) 죽이고 새로 뽑는 일을 반복한다”고 썼다. ‘왕을 뽑는 나라’란 표현은 카를 비트포겔이 쓴 ‘동양적 전제주의’에서 따온 것이다.
“왕을 세습하지 않고 선거로 뽑는다고 해서, 전제의 정도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대통령에게 너무 막강한 권한을 준다.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은 ‘성군’, ‘개혁 군주’ 관념은 우리 편의 승리를 중시할 뿐,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과 약점을 가볍게 여긴다. 그 결과는 ‘왕의 실패’의 반복이었다.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보다, 주로 전 정권의 실패에 기대어 집권에 성공하는 대통령들은 머잖아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따돌림을 당한다. 문제 해결의 정치는 사라지고, 곧 치열한 권력 투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 내란은 너무 일찍 실패가 확인돼 권력 상실 위기에 처한 윤석열이 대통령 가면을 벗어던지고 ‘폭군’의 얼굴을 드러낸 사례다. 이로써 우리는 성장잠재력의 추락, 양극화, 저출생 등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3년 가까운 시간을 또 잃어버렸다.
정권 교체는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승만의 경찰, 박정희·전두환의 군부가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의 도구로 완전 전락한 검찰 개혁이 급선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주권자의 뜻을 반영한 정치가 이뤄지게,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우리 머릿속의 ‘성군’을 지워 없애고, 3권 분립이 명확하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 심의가 주권자 국민의 감시·통제 아래 이뤄지게 해야 한다. 철저하게 양극화된 한국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길은 멀고 험해 보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크는 데 더는 ‘백성의 피’는 필요 없다. 그러나 ‘왕의 피’는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란 수괴와 중요임무 종사자들을 법에 따라 엄히 처벌하고, 절대 사면을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대놓고 왕 노릇 하는 사태의 재발을 막을 최소한의 예방약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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