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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뉴욕의 어느 전시장. 백여 개의 업체가 모여 전자제품을 선보였다. 방문객은 겨우 만 명 남짓. 그때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작은 전시회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세계 기술의 흐름을 좌우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되리라는 것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엔 그저 '소비재 전자제품 박람회'였다. 독일의 IFA나 CeBit과 견줄 수도 없는 작은 전시회였다. 1978년에야 라스베이거스로 자리를 옮겼고, 그마저도 시카고와 번갈아 가며 열렸다. 이 도시에 완전히 정착한 건 1995년의 일이다.
변화는 2010년 즈음부터 시작됐다. 전자제품이 정보통신과 결합하기 시작했고, 2009년엔 현대자동차가 참가하면서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영역이 더해졌다. 이제 CES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다. 미래의 비전과 통찰을 나누는 글로벌 대화의 장이 됐다. CEO들과 투자자들이 모여들고, 혁신상은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이제 2025년, CES의 주제는 'Dive In'이다. 물속으로 뛰어든다는 뜻이다. 기술이라는 깊은 물속으로 우리가 뛰어든다는 의미일 텐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팬데믹이 지나가고 난 뒤, 기술은 더욱 깊숙이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작년 CES에는 4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참가했고,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1967년의 그 작은 전시회가 이렇게 거대해질 줄은, 아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인공지능이다.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이 놀랍다. 엔비디아는 NeVA라는 시스템을 선보일 예정인데, 이미지를 보고 질문에 답하는 AI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주르'를, 구글은 '첩 AI'를 내놓는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일을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가 AI를 돕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데이터로 AI는 배우고 성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AI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인지도 모른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는 더욱 흥미롭다. '원격 의료 스테이션'이라는 게 있다. 프라이빗한 부스에 들어가면 의사와 화상으로 상담할 수 있고, 혈압이나 체온 같은 기본적인 검사도 할 수 있다. 미국의 온메드라는 회사가 만든 이 시스템을 보면서, 나는 카프카의 '시골 의사'를 떠올렸다. 눈보라 치는 밤에 환자를 찾아가던 의사의 모습과, 이제는 스크린 너머로 환자를 만나는 의사의 모습. 둘 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아픈 이를 돕겠다는 의지 말이다.
로봇의 진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삼성전자의 '발리'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집 안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돕는다. 프로젝터도 되고, 집안의 전자제품도 제어한다. 한국의 후카시스템은 재활용 로봇 '후카고'를 선보인다. 걷는 것을 도와주는 로봇이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로봇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동반자가 될까, 아니면 우리의 그림자가 될까.
완전 자율적인 무인 로봇 레스토랑 '로웍'도 있다.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고, 서빙을 하는 모든 과정을 로봇이 한다.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레스토랑이라니. 맛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는 온기가 필요하다.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온기 말이다. 로봇은 그것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게이밍 분야의 변화도 흥미롭다. 소니의 새로운 VR 헤드셋은 단순한 게임기가 아니다. 공간 콘텐츠를 만드는 도구다. 엔지니어들이 이것을 쓰고 가상의 공간에서 제품을 만들고 수정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클라우드 게이밍은 이제 고가의 장비 없이도 최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아마존의 '루나'나 구글의 '스테디아' 같은 서비스들. 게임이 더 이상 특별한 취미가 아닌, 일상적인 문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CTA의 K 디렉터는 말한다. CES 2025에서 선보일 기술들이 기후 변화, 정신 건강, 생산성 같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그의 말이 맞길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돕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인지를.
1967년의 그 작은 전시회가 이제는 세계 기술의 미래를 좌우하는 거대한 축제가 됐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축제의 한가운데서,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Dive In'이라는 주제가 제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미 깊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할 때다.
기술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꿈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이제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물고기가 아가미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기술 없이는 살기 힘들어졌다. 1967년부터 시작된 이 긴 여정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기술이라는 바다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것뿐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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