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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선결제 릴레이 현상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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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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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 나라에 더 나은 시대를 만들고 싶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계 여성이 계엄군으로 1980년 광주에 투입되었던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윤석열 탄핵 집회에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사연이 많은 이들을 울렸다.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시민이 ‘뭐라도 하고 싶다’며 선결제 릴레이에 나선 모습은 44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80년 5월,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광주로 연결된다.



탄핵 집회에 등장한 선결제 릴레이가 ‘케이(K) 시위’의 새로운 문화로 부상하면서 관심이 뜨겁다. 선결제는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응원하는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미리 인근 상점에 결제해 뒀다’고 글을 올리고, 시민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서울 여의도는 물론 탄핵 집회가 열리는 전국 각지에서 선결제 릴레이가 쏟아졌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참여 의지가 낳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정치 행동인 셈이다.



연결과 공유의 가치가 확산하는 데 소셜미디어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선결제 매장의 위치를 알려주고, 수량과 품목이 얼마나 남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선결제 나눔 지도 ‘시위도 밥 먹고’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소셜미디어에 공유된 누군가의 선결제는 다른 이들의 선의를 추동하면서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선결제의 태생은 고결하지 않다. 공무원이나 기업이 법인카드로 주변 식당에 불용액을 선결제하거나, 이른바 ‘카드깡’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성격이 바뀌었다. 위기에 처한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선결제를 통한 ‘연대소비’로 살아났다. 지역의 ‘추억이 깃든 가게’를 살리기 위해 소비자가 선결제를 통해 응원하고, 자영업자는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는 ‘상생’과 ‘신뢰’의 움직임이 꿈틀댔다. 크라우드펀딩처럼 특정 가치나 고유한 창작물을 후원하고 나중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는 방식도 선결제를 통한 시민참여, 연대소비의 일환이다.



엠제트(MZ) 세대의 가치소비를 의미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은 이미 중요한 추세로 확산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 자신의 가치관, 정체성과 부합하는 기업의 제품을 선택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다. 탄핵 집회로 되살아난 선결제는 연대와 신뢰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소중한 빛으로 세상을 환히 비추고 있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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