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스타트업얼라이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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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이동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주 현상이다. 과거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면, 이제는 스타트업들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역을 넘나든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지역 간 스타트업 이동 현황과 과제' 보고서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의 실체를 구체적인 수치로 보여준다. 2021년부터 2024년 9월까지의 기간 동안 619개 스타트업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이 보고서는, 수도권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서서히 다극화되는 현상을 포착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수도권 스타트업의 순유출 현상이다. 2021년을 기점으로 수도권에서 빠져나가는 스타트업의 수가 유입되는 수를 지속적으로 초과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을 떠나는 스타트업의 39%가 충청권으로 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충청권이 가진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한 R&D 인프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부동산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보고서가 분석한 711건의 이동 사례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헬스케어 분야다. 154건의 이동이 발생한 헬스케어 분야는 전체 이동의 21.7%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콘텐츠/소셜 분야가 75건(10.5%), 식품/농업 분야가 73건(10.3%)을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는 각 산업 분야별로 선호하는 입지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타트업의 이동 패턴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헬스케어나 교육, 모빌리티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수도권이나 충청권으로의 이동을 선호한다. 이는 이들 분야가 요구하는 고급 인력과 자본에 대한 접근성이 해당 지역에서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식품/농업이나 환경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비수도권으로의 이동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해당 산업들이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기존 산업 기반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업 기반이 튼튼한 호남권이나, 해양 산업이 발달한 동남권으로의 이동이 이러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023년의 경우 204건의 이동이 발생하며 최근 4년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스타트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최적의 사업 환경을 찾아 나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각 지역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호남권, 동남권, 강원권에서 나타나는 스타트업 순유입 증가 현상은 고무적이다. 이들 지역은 각자의 특색 있는 산업 기반과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강원권의 경우, 관광 및 레저 산업과 연계된 스타트업들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보고서는 스타트업의 이동을 업력별로도 분석했다.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스타트업의 평균 업력은 4.6년으로, 다른 유형의 이동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는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들이 더 큰 시장과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보고서는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발전을 '균형'이 아닌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각 지역이 자신만의 독특한 강점을 살린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할 때, 스타트업의 지역 이동은 불균형의 산물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모든 지역이 수도권과 같은 종합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각 지역의 특성과 강점을 살린 특화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 기술 스타트업은 호남권에서, 해양 기술 스타트업은 동남권에서, IT 기반 스타트업은 충청권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타트업의 지역 간 이동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보다 성숙한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다극화된 균형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은 자신만의 고유한 경쟁력을 발견하고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보고서는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언도 담고 있다. 첫째, 각 지역은 자신의 강점을 살린 특화된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지역 간 협력을 통해 각 지역의 부족한 부분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더 이상 수도권 중심의 단일 구도가 아닌,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허브들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균형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각 지역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 부문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스타트업들의 지역 간 이동이 단순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더 나은 성장을 위한 전략적 결정이 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더욱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글 : 손요한(russia@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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