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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백영옥의 말과 글] [385] 완벽주의라는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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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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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까지 전교 1등을 하던 남자가 한 번의 시험 때문에 내신이 추락한 후, 시험 공포증으로 사회 진출을 못 했다는 사연을 들었다. 글자 하나만 틀려도 새 제품을 사느라 수십 권의 쓰다 만 다이어리를 갖게 된 여자의 사연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건 완벽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작은 것까지 신경 써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전문가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청결 완벽주의자라고 소개한 남자의 방은 의외였다. 창틀 먼지, 손톱 위 거스러미 하나 참을 수 없다던 남자는 왜 떡진 머리로 쓰레기 방에 고립됐을까. 그는 책상 하나를 닦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방 안의 먼지와 쓰레기를 완벽히 치울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완벽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떨어질 일이 없고,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삼진 아웃되는 위험은 없다. 성공의 정의가 성취로 나아가는 게 아닌, 실패를 막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의 또 다른 얼굴은 타인의 시도를 지적하며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방구석 평론가다.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환경을 걱정하면서 왜 탄소 배출이 많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느냐고 따지는 사람처럼 말이다.

완벽주의를 게으름이나 회피에 대한 방어 논리로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정의하면 우리의 기도는 ‘실패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역시 완벽해서가 아니라 써가면서 점점 완성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안다.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있어야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게 아니다. 완벽한 준비란 없다. 준비하면서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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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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