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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특파원 리포트] 윤동주를 기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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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020년 11월 일본 오사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우호 행사 ‘윤동주의 시와 가을의 교토 답사’의 한 참석자가 교토 도시샤대 교정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대는 내년 2월 그의 80주기에 맞춰 사후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주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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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다. 시비에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그의 서시(序詩)가 새겨졌다. 도시샤대학은 1942년 10월 스물다섯의 윤동주가 편입한 학교다. 시비 앞에선 매년 그의 명일(命日)마다 빠짐없이 헌화식이 열린다.

교토부(府) 우지시의 우지강 인근 한 귀퉁이엔 ‘기억과 화해의 비’가 서있다. 1943년 6월 이곳에서 귀국을 결심한 스물여섯의 윤동주는 영문과 친구들과 송별 소풍을 했다. 생전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비에 새겨진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란 시귀는 젊은 윤동주의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한 달 뒤, 윤동주는 하숙집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책상 위엔 귀국편 티켓이 있었다. 하숙집 터에도 시비가 세워졌다. 이후 교토예술대학 캠퍼스로 바뀌었는데 대학 측이 그 터에 시비를 세웠다. 1945년 2월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스물여덟의 윤동주는 순국했다. 후쿠오카 시민들은 지금도 형무소 자리에 시비를 건립하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은 우리 생각보다 많다. 일본 전후(戰後)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는 윤동주의 청아한 시풍을 흠모해 한글을 배웠다. 수필집 ‘한글로의 여행’에서 ‘비운의 청년시인 윤동주’라는 에세이를 썼는데 나중에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일본에서 1984년(출판사 가게쇼보), 1998년(시가고보), 2004년(모즈고보), 2012년(이와나미분코), 2015년 (코울색)에 번역본이 출판됐다.

윤동주가 순국 80주기인 내년 2월 16일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1875년 설립된 이 대학이 사자(死者)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건 처음이다.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 총장은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유를 탄압하는 (일본) 군부에서 윤동주를 지켜내지 못한 분함이 있다”며 “명예 박사 학위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일본인이 윤동주를 좋아하는 건 아닐 터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읽곤 섬세한 언어에 매료되듯 일본인들도 윤동주의 시를 만나면 맑은 언어와 도덕적 순결함에 빠진다. 정치는 겨우 5년짜리 언어지만 윤동주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100년 이상 이어줄 존재라고, 스무 살 즈음엔 시인을 꿈꿨다가 쉰 살에도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는 기자는 믿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려다 정국 탓에 못 간다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내년 2월 도시샤대학에 오면 어떨까.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옆에 앉아, 그에게 윤동주의 서시를 일본어로 낭독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더욱 많은 일본인이 윤동주가 읊은 ‘하늘’ ‘별’ ‘십자가’ ‘거울’과 만나길 바란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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