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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매일 봐야하는 직업이다. 특히 스타트업이라는 세상에서 춤추는 숫자들을. 이상한 건, 연말만 되면 이 숫자들이 더욱 격렬한 춤을 춘다는 것이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때로는 환각에 빠진 사람처럼 실체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절대값이 작을 때 비율은 과장된 환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키가 1센티미터인 생명체가 2센티미터로 자랐을 때, "성장률 100%!"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기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 실체는 미미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바로 실리콘밸리의 창업자이자 린스타트업 방법론의 창시자인 에릭 리스가 말한 '허세 지표(허영 지표, vanity metrics)'의 한 형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비즈니스의 건강성과는 아무 상관없는 숫자들. 마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숫자처럼.
특히 연말이 되면 이런 허세 지표들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월간 활성 사용자 수 수십만 명!"이라고 외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 앱 다운로드 횟수일 때도 있다. "매출 성장률 900%!"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월 매출 10만 원이 100만 원으로 는 정도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거짓말쟁이는 통계를 사용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더 교묘한 속임수도 있다.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경우다. 매출 인식 시점을 앞당기거나, 비용을 다음 해로 이월시키거나. 때로는 실제로 받지도 않은 투자 금액을 언론에 흘리기도 한다. 국내 투자를 마치 해외 투자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도 봤다. 매출이 가장 낮았던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 성장률을 계산한다든가, 특정 상품의 판매량만 따로 떼어내어 성장률을 내세운다든가. 이런 식의 통계는 마치 바늘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진실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행태가 만연한 이유는 뻔하다. 생존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냉혹하다. 투자금이 바닥나기 전에 다음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실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게다가 경쟁사들도 다들 비슷한 짓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면 우리만 정직하게 하다가는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종종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회사가 실제로 해결하고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측정하고 계십니까?" 대부분은 이 질문에 성장률이나 다운로드 수, 가입자 수 같은 지표를 늘어놓는다.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듣고싶은 성과 지표는 따로 있다. 실제 문제 해결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들. 예를 들어 고객이 얼마나 자주 서비스를 사용하는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실제로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등이다. 이런 지표들은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척도다.
투자자들도 이제는 이런 눈속임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물어본다. "실제 숫자가 얼마입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절대값이다. 당신의 서비스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지.
모든 비율은 보조 지표일 뿐이다. 마치 자동차의 가속도처럼. 정작 중요한 건 당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다. 100km/h로 달리는 차가 1,000km/h로 가속하든 말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정한 성장은 비율이 아닌 절대값으로 말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해 100명의 고객을 확보했고, 올해는 1,000명의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설명이 "성장률 900%!"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지 않은가.
스타트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흐름이다. 허세 지표는 잠시 달콤한 환상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사탕과도 같다. 당장은 달콤하지만, 치아를 썩게 만들 뿐이다.
이제 곧 새해가 온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한 해의 성과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허세의 유혹에 빠지지 말기를. 차라리 부족한 점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 진실은 때로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아닐까.
결국 숫자는 이야기를 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진실해야 한다. 비율이라는 베일 뒤에 숨지 말자. 당신의 성장이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다. 허세로 포장된 큰 성장보다는 진실된 작은 성장이 낫다. 적어도 그것은 단단한 토대가 되어줄 테니까.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그 도전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성이다. 자신과 남을 속이는 순간, 그 도전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허세로 포장된 성공은 결국 실패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진실은 때로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한 진실만이 우리를 진정한 성공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글 : 조상래(xianglai@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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