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국제부가 뽑은 올해의 희망: 시리아의 변신
지난 30일 시리아 중앙은행 71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재에 임명된 마이사 사브린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리아 국영통신 사나(S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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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축출한 뒤 수립된 시리아 과도정부가 다수 여성을 고위직에 기용하고, 소수 종교 및 소수민족에 대한 포용 메시지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시리아 과도정부의 주축 세력은 인구의 절대 다수가 믿는 이슬람 수니파를 신봉하는 무장 세력인데,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서방 요구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시리아의 변신’에 주목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 축출에 앞장선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는 시리아 과도정부는 통화·금융정책을 총괄할 중앙은행 총재에 마이사 사브린 전 부총재를 임명했다고 지난 30일 발표했다. 회계 전문가로 알아사드 정권 당시 중앙은행 부총재와 수도 다마스쿠스 증권거래소 이사 등을 지낸 그는 시리아 중앙은행 71년 역사상 첫 여성 총재가 됐다. 앞서 과도정부는 지난달 20일 여성 정책 관할하는 ‘여성국’을 설치하고 신임 국장으로 아이샤 알딥스를 임명했다.
중앙은행장 인선 전날에는 시리아 과도정부의 실권자로 꼽히는 HTS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본명 아흐메드 알샤라)가 사우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대 관계인 친서방 무장 조직 시리아민주군(SDF)과 통합을 전제로 대화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SDF의 주축인 쿠르드족은 시리아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독립 성향이 강하다. HTS·과도정부의 최근 행보는 서방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중동 방문 때 시리아 과도정부 인사 접촉 사실을 밝혔고, 기자회견에서는 “(시리아 차기 집권 세력은) 여성과 소수민족을 비롯한 모든 시리아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여성·소수파를 아우르는 시리아 과도정부의 행보가 잇따르는 모습이다.
그간 미국은 알아사드 치하 시리아와 관계를 단절하고 각종 경제 제재와 군사 작전을 강행해왔다. 미국은 알아사드를 축출한 HTS도 경계했다. 한때 이들이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의 하부 단체였다는 점 때문에 지금도 테러 단체로 지정해 두고 있다. HTS와 시리아 과도정부의 최근 행보가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를 풀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들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뒤 이슬람 원리주의에 집착하며 여성을 가혹하게 탄압한 탈레반과 차별화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시리아의 미래를 낙관하는 분위기는 번지고 있다. HTS는 다마스쿠스에서 알아사드를 쫓아내고 시리아를 장악한 다음 날 여성에게 이슬람식 복장 착용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알딥스 신임 여성국장은 최근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정부가 시리아 여성을 사회·문화·정치 기관에 참여시키고 자격을 갖춘 여성을 의료·교육 부문에 채용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하경 |
과도정부와 HTS는 알아사드 축출 후 소수 종교 신도들을 포용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시리아는 전체 인구의 72%가 이슬람 수니파를 믿는다. 이슬람 시아파 및 소수 종파(16%), 기독교(10%) 등은 소수다. 이 때문에 수니파가 주축인 과도정부가 시아파·기독교를 탄압하리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HTS는 시리아 장악 후 소수 종교도 포용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내고 있다. 알줄라니가 지난달 22일 이슬람 소수종파 드루즈파 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를 만난 것도 그런 행보로 해석된다.
한때 중동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개방된 나라로 여겨졌던 시리아는 알아사드 부자의 반세기 폭정(1971~2024), 6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2011~2024),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장악(2014~2018) 등 시련을 겪으며 ‘세계 최대 난민 배출국’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쇠퇴를 우려하는 자유 진영은 이런 시리아가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서 ‘아랍의 봄’(2011년 연쇄 발생한 중동 국가의 민주화 항쟁)의 뒤늦은 성공 사례로 기록되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하고 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자유 선거를 통해 정식 내각을 구성한다는 장기적인 청사진을 세워 놓았다.
‘아랍의 봄’이 중동에 자유민주주의를 도래하게 하리라는 기대는 대부분 무너졌다. 리비아와 이집트 등 독재자를 축출한 국가 상당수가 무정부 상태에 빠지거나 권위주의로 회귀했다. 시리아가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여전한 이유다. 시리아 출신 첫 유학생으로 한국에 귀화한 압둘 와합(40)씨는 31일 본지 통화에서 “아직은 과도정부이기 때문에 정부 구성을 평가하기는 이른 단계고 정부 구성원이 수니파 남성이라는 점도 걸리는 부분”이라면서도 “다만 현재 시리아 국민들은 안정을 위해 ‘믿고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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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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