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HD현대중공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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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취임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 예고에 이어 대통령·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사태 등으로 한국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라 안팎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내는 기업들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26일 울산광역시 동구에 있는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독(Dock·물을 채우고 뺄 수 있게 만든 선박 건조 작업장) 10개는 모두 건조 중인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선 연간 최대 50척의 선박을 만들 수 있다. 그중 축구장 9개 넓이로 가장 큰 3번 독에서는 선박 길이가 300m에 달하는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액화석유가스(LPG·Liquefied Petroleum Gas) 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이 배들을 움직이게 하고 전력을 만들어 내는 엔진은 선박의 심장으로 불린다. 조선소 내 힘센엔진2공장 내부로 들어서니 높이 3.5~4m의 대형 버스 크기에 무게는 90톤(t)에 달하는 힘센엔진(HiMSEN Engine) 수십 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힘센엔진은 HD현대중공업이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2000년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4행정(stroke·연료 폭발을 위해 실린더 안의 피스톤이 4번 움직임) 중형엔진(중속엔진)이다. 대형엔진이 프로펠러(추진기)를 달아 선박을 추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중형엔진은 엔진 끝에 발전기를 달아 선박 내 전력 생산을 담당한다. 보통 선박 한 척에는 높이 13m의 대형엔진 한 대와 발전용 중형엔진 3~6대가 들어간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HD현대중공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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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힘센엔진과 같은 중형엔진을 자체 기술로 개발한 나라는 개발 역사가 100년이 훨씬 넘는 3국(핀란드·독일·일본)뿐이다. HD현대중공업처럼 선박 엔진 개발 역사가 20여년에 불과한 회사가 독자 개발에 성공하고 전 세계 60여국에 수출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선박용 중속엔진 약 35%)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유정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품질·기획 부문 전무는 “선박 시장의 고객들은 오랜 세월 단 몇 개 회사가 만든 엔진만 쓸 정도로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신생 회사가 기술이 있다고 해도 시장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신뢰를 쌓기는 더 어렵다. ‘HD현대중공업은 문제가 생기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돈을 얼마를 써서든 꼭 해결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고객 신뢰를 확보해갔다”고 말했다. 유 전무는 1994년 HD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엔진기계 주요 부문장을 역임했다.
공장을 찾은 날에는 작업자 여러 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힘센엔진 상부에 길게 뻗은 노란색 굵은 관과 엔진 본체의 원형 연결부 8곳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노란색 관은 엔진에 가스 연료를 공급하는 장치다. 가스가 새지 않게 빈틈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힘센엔진 생산 물량의 60%가 전통 선박용 연료인 중유와 LNG·메탄올 등 저탄소 친환경 연료를 모두 장착하고 선택적으로 쓸 수 있는 이중 연료(DF·Dual Fuel) 엔진이다. 이중 연료 엔진은 전체 선박 신조(신규 건조) 시장에서 60~70%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엔진 하나에서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고 그만큼 가격도 비싸 부가가치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중형 엔진 힘센엔진. /HD현대중공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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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은 디젤 외에 다른 연료를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2008년 가스 엔진 개발에 착수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디젤과 LNG를 같이 쓰는 이중 연료 힘센엔진을 개발했다. LNG를 중유와 같이 쓰려면 LNG를 초저온에서 액화 상태로 보관하는 관리 기술이 필수적이다. 2011년엔 대형 엔진 설계 기술을 가진 독일 만(MAN)과 함께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LNG 이중 연료 대형엔진을 개발했다. 대형 엔진은 모든 조선사가 독일 MAN과 스위스 윈지디(WinGD)가 개발한 설계 기술을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도입해 생산한다.
HD현대중공업은 전 세계 대형엔진 시장 점유율도 약 35%로 1위다. 직접 설계를 하지는 않지만 생산량과 품질 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중공업이 연간 약 300대, HD현대마린엔진이 80대 정도의 대형엔진을 만든다. 하루에 대형엔진을 한 대씩 생산하는 셈이다. 중국은 10개 제조사가 합쳐서 연 700대 정도를 생산한다. 중국은 아직 이중 연료 대형엔진 기술력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한화엔진과 일본이 각 100대 정도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유정대 HD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전무. /HD현대중공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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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무는 “많이 만든다는 건 그만큼 많이 판다는 의미로, 우리는 대형엔진 원천기술 회사들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그대로 만들기만 하지 않고 필요한 부분을 이야기해 바꾸기도 하고 시장을 빨리 읽으며 기술 변화를 선도해 왔다”고 말했다.
작년 10월엔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압 직분사 방식의 힘센 암모니아 이중 연료 엔진(H22CDF-LA)을 개발했다. 기존 암모니아 엔진은 암모니아 연료를 공기와 섞고 엔진 안의 연소실(폭발이 일어나는 공간)에 집어넣어 압축하며 연소시키는 저압 예혼합 방식이었다. 반면 고압 직분사는 엔진 연소실에서 암모니아 연료를 압축된 공기에 높은 압력으로 분사해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엔진 출력과 연료 효율을 높이고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수소와 질소 화합물인 암모니아는 인화성(불이 잘 붙는 성질)이 있어 잘못 연소가 일어나면 폭발 위험이 크고 고압 직분사 방식은 기술적으로 난도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은 연료 분사 시점을 최적화하며 암모니아 연소율을 끌어올리고 안전하게 연소하도록 관련 부품도 재설계했다. 고압 연료분사장치도 자체 설계해 개발했다. 유 전무는 “설령 가스가 새더라도 탐지가 가능한 일련의 안전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기술력의 차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제작된 선박용 대형 엔진. /HD현대중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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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이 만드는 힘센엔진은 부품도 대부분 국산이다. 협력사가 생산하는 모듈 형태의 부품을 납품 받아 엔진 블록이라는 엔진 몸체에 조립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5000마력 이상 엔진을 만들어내는 힘센엔진 전체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9조에 따라 지정된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다.
힘센엔진은 총 3개 공장에서 연 1000대가 생산되는데, 이 중 힘센엔진2공장 조립 및 시운전장에서 약 300명이 연 600대를 만들고 있다. 엔진 3~4대가 들어가는 호선당 5~6명이 본체 조립을 진행하고, 배관 등을 거쳐 엔진 제작을 완료한다. 엔진 1대를 만드는 데 4주 정도 걸리고 이후 일주일간의 자체 시운전 후 선주 입회 검사를 실시한다. 작년 3분기 공장 가동률은 146%를 넘어섰다. 공장 가동률이 100%를 넘은 것은 일감이 많아 특근과 야근을 많이 했다는 의미다.
힘센엔진은 선박용뿐 아니라 육상발전용으로도 쓰인다. 2005년엔 힘센엔진을 탑재한 육성발전설비 588기를 쿠바 전역에 공급했다. 쿠바는 10페소 지폐 뒷면에 ‘에너지 혁명’ 문구와 함께 힘센엔진 육상발전소를 그려넣기도 했다.
울산=김남희 기자(kn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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