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먹밥을 나눠 먹는 광주시민들. 5·18기념재단 제공 |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잘게 썰어 양념한 버섯을 팬에 달달 볶는다. 간 고기에 불고기 식으로 간장 양념을 해서 바싹 볶아도 좋다. 무엇이 됐든 취향껏 ‘소’ 역할만 할 수 있으면 미리 볶아 한 김 식혀둔다. 그 사이 대용량 밥솥에서는 밥이 끓고 있다. 뜸까지 잘 들여 고슬고슬하게 지어졌으면 참기름 넉넉히 두르고 맛소금을 골고루 뿌려 잘 섞어두자. 갓 지은 밥을 적당히 쥐어 미리 만들어 둔 소를 넣고 동그랗게 모양을 잡는다. 한 김 식히면 좋겠지만 뜨거울 때 쥐어야 모양이 잡힌다. 동그랗게 말린 밥을 김 가루에 굴리면 주먹밥 완성이다. 그렇게 큰 밥통 한솥을 다 비울 때까지 주먹밥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대로 된 밥상 차리는 것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여간한 노동이 아니다. 요령 없어 크기 제각각이지만 맛은 있다. 농성장에 가져갈 참이다.
입에 넣는 건 금방인데 만드는 데에는 제법 손이 가는 음식들이 있다. 제 손 거쳐 만들지 않으면 그저 뚝딱인 줄 아는 음식들. 주먹밥, 김밥, 유부초밥 같은 나들이 음식들이 그렇다. 수저와 그릇 놓고 식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노동은 집약적인 수고가 든다. 수저 놓을 형편 못 되는 식사자리가 어디 나들이뿐일까. 급하게 차린 농성장에서 나들이 음식은 거의 주식이고,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찬 광장의 시민들을 먹일 일용할 양식도 나들이 음식이 되기 마련이다. 5월 광주의 주먹밥이 그랬다. 양동시장의 상인들은 쌀밥에 소금 쥐어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렇게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의 주린 배를 채웠다.
2024년 여의도의 겨울, 먹이기 위한 노동은 자영업자들의 손을 빌려 재현된다. 어느 가게든 선결제가 이어졌고, 상인들은 선결제 물량이 다 나갔더라도 기꺼이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아메리카노 한잔을 얻어 마셨다. 광장에 나올 수 없는 이들은 노동의 대가를 기꺼이 흘려보냈고, 그이들의 시간만큼 누군가를 먹였다. 편의점의 핫팩이 동나면, 누군가 상자째 들고 온 핫팩들이 일사불란 나뉘었다. 주머니의 초콜릿이며 사탕이 한데 모여 남태령 집회 장소를 한바퀴 돌기도 했다. 뒷사람 먹으라며 차마 꺼내 먹질 않아 오히려 남았다는 미담이 들려온다.
일상에선 그러려니 하던 당연한 것들이 한순간 무너졌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 여의도를 향했던 이들의 마음은 공포와 용기로 뒤섞여 있었다. 계엄 이전의 일상이라고 뭐 얼마나 자랑할 만했는가? 바닥 모르고 퇴보하던 시절을 살며 우리는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함께 사는 세상을 욕망하고 있었음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증명되고 있다. 사십여년 전 주먹밥 짓는 마음 모여 네 글자를 세웠다. ‘민주주의’. 누군가를 먹이고 싶은 마음, 그게 누가 됐든 배곯지 말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넘실거릴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양동시장 주먹밥이, 전태일의 풀빵이 생각났다. 분절된 사회 속, 각자도생으로 사는 줄 알았건만 이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 서로가 서로를 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공동의 경험이 만들어낼 세상은 여전히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그럼에도 몇걸음 더 걷게 될 것이다. 얼굴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이 서로를 먹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연대다. 여전히 비통한 이 세상에서, 연대로 작동할 세계를 꿈꾸며 주먹밥을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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