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법사위 발언..법원 내부서도 ‘재판사항인데’
그러나 이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들도 있어 오늘은 이 문제를 좀 더 정밀하게 따져 보고자 합니다.
형소법 110조·111조는 군사상·공무상 기밀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규정입니다.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적은 수색영장은 체포영장과 함께 발부되었습니다.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서 특정 법조문의 효력을 배제하는 문구를 적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영장의 효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110조는 증거물 등 물건의 압수수색에 적용되고 체포·구속할 사람을 찾는 수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형소법 137조는 81조에 따라 발부받은 구속영장을 집행할 때 미리 수색영장을 발부받기 어려울 경우 건물에 들어가 피고인을 수색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인데, 바로 다음 조항인 138조에서 이런 상황에 적용되는 ‘준용조문’을 표시하면서 119조(집행 중의 출입금지) 120조(집행과 필요한 처분)등을 적었고 110조, 111조 등은 준용 대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고인을 수색하는 경우에는 군사상·공무상 비밀로 인한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반대의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형소법 137조가 말한 ‘81조에 따라 발부한 영장’은 법원이 재판단계에서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발부한 영장인데, 219조는 검사 또는 사경의 압수수색, 검증에 준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형소법의 체계 자체가 이처럼 법원의 처분에 대한 규정을 수사기관의 처분에 준용하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219조가 명시한 준용 규정 중에는 ‘109조 내지 112조’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검증을 하는 경우에는 110조, 111조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조문 구조를 두고 보더라도 충분히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류적 견해’라는 천 처장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 형사소송법 학자는 “도대체 어디서 인정하는 주류적 견해인지 모르겠다”며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피고인 피의자의 권리 보장인데, ‘사람수색에는 110조 11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명문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 피의자에 불리한 유추해석을 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법원 내부에서도 천 행정처장의 발언에 대해 놀라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재판에서 다뤄질 내용입니다. 영장 발부에 대해 윤 대통령측이 신청한 이의가 기각됐고 그에 대한 항고, 재항고가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현직 판사는 “대법원에 재항고가 예정된 재판사항에 대해 답변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합니다. ‘주류적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학계에서 본격적인 논의도 없었던 상황인데 법원행정처장이 ‘주류적 견해’를 언급하는 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서 특정 법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 자체가 논란의 소지가 큽니다. 그 영장을 통해 확보된 증거의 적법성에도 의문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 차례 집행 실패 후 군사상·공무상 기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나왔다면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갔다가 110조·111조 때문에 진입조차 못한 경우 영장을 재청구하든, 아니면 압수수색을 거부한 시설 관리자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법문에 따르더라도 군사상·공무상 기밀을 이유로 무조건 압수수색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시설 책임자 혹은 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할 수 없다’ 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즉 110조·111조에 따르더라도 압수수색 거부가 정당한지를 따져 볼 여지가 있는데 영장에 이들 조항을 배제하는 문구를 담았다면 그 자체로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법행정 책임자의 ‘주류적 견해’ 발언은 논란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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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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