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공직 사회에 폭탄 던진
전직 서기관 노한동씨
지난 12월 28일,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부제는 ‘한국 공직 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 벌써 5쇄를 찍었고 1만2000부 이상 판매됐다. 저자는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 근무한 노한동(38) 작가. 그는 2023년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한 직후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책을 써 공직 사회 내부를 폭로했다.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을, 구조적 비효율과 책임 회피의 메커니즘을.
노한동 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간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썼다.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선수 선발 논란으로 선동열 감독을 국정감사장에 세운 국회가 무분별하게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을 공직 사회 행정력 낭비의 대표적 ‘헛짓거리’로 꼽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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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해서 무능해진’ 사람들
-공직 사회가 실제로 무능합니까?
-사회 문제를 해결할 권한을 주지 않는 게 문제인가요?
“순환 보직제로 한자리에 근무하는 기간은 길어야 2년입니다. 과장·국장은 1년에 한 번씩 널뛰기하니 담당 분야를 알기 어렵고요. 담당 사무관들은 무의미한 보고서 만들기 같은 가짜 노동과 헛짓거리를 하기도 바빠요. 어차피 공무원 평가 시스템은 무엇을 얼마나 잘 해결했느냐를 묻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과보다 순응이 더 큰 가치를 인정받아요. 그러니 문제를 해결하는 척만 하고, 사내 정치로 중요 보직에 가는 데 집중하죠. 그 시간을 버티면 승진은 뒤따라오고.”
그는 “공직은 즉각적 보상 체계가 작동하는 일자리가 아닌, ‘장차 고위 공무원 자리를 주겠다’는 어음과 같은 약속으로 유지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래의 약속을 믿고 불만을 갖지 않는 사람이 공무원 조직의 에이스가 된다는 뜻이다.
“많은 공직자가 사회 문제에 즉각 대응하기 때문에 우리가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건 맞아요. 하지만 대다수 중앙 부처가 야근하는 건 ‘비효율적 보여주기식 관행’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타 부처·부서의 정책을 취합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호치키스 행정’, 부서 간 체계가 없어 숫자 하나 바뀔 때마다 수백 차례 공유해야 하는 메일과 엑셀 파일, 장관의 입맛에 따라 홍보용 단어를 바꾸는 데 쓰는 시간 등을 예로 들었다. 이런 ‘가짜 노동’만 없애도 효율성이 확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국회의 철학 부재, 중앙 부처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의 줄 대기 등이 공무원 조직의 무능을 불러왔다고도 합니다만.
공무원 사회의 무능을 폭로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의 저자 노한동 작가.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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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렇게 썼다. “공직 사회에는 변덕스러운 정치의 외풍을 걷어내면 관료가 본래의 유능함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신화가 있다. 무능의 원인을 정무직과 집권 세력에 돌리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외풍은 공무원 조직의 무능을 숨기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공무원을 그는 이렇게 정의했다. “헌법에 의해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만 그 어느 조직보다 정권과 여론에 휩쓸린 채 중심을 잡지 못한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공무원들을 향해 ‘바람보다 빠르게 눕는다’고 하지요.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선 상명하복 문화나 선출된 권력에 대한 복종의 의무도 일리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과도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고위직은 퇴직 후 받게 될 자리에 연연해 항명하지 않고, 하위직은 보고서 만들기나 국회에 가서 대기하기 같은 일로도 바빠 굳이 따지거나 항명하지 않지요.”
공무원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출생 신고, 부동산 거래, 국민 연금…. 또 그들이 내놓는 정책의 보호 아래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122만1746명(2023년 기준)의 공무원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의 위기는 숫자로 체감할 수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5년 미만 조기 퇴직자는 2019년 6663명, 2021년 1만692명, 2023년 1만3823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국 공무원 노조의 설문 조사(2023년)에서 20~30대 공무원 47%가 ‘중도 사직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그중 69%가 ‘낮은 임금’을 이유로 꼽았다.
-경제적 이유로 퇴사했나요?
“4급으로 승진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어요. 상후하박(上厚下薄)의 공직 구조에서 이제야 경제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후해지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밤늦게 청사에 혼자 앉아 있으면 ‘내 인생은 망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젊은 공무원들은 ‘낮은 처우’를 이탈의 이유로 꼽는데.
“권한은 없는데 공무원이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경우는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권한과 책임이 불일치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만연하죠. 로스쿨이나 기업으로 가겠다는 젊은 직원이 많아요. 단순히 월급 같은 처우만의 문제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친정과 옛 동료들을 비판하는 책을 낸 게 혹시 시민 단체 활동이나 정치를 위한 발판인가요?
“하하, 전혀요. 제 무력감은 사적인 게 아니라 공적 부분에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직 선배들은 퇴직 이후의 삶 때문에, 또 후배들은 몸담은 시간이 너무 짧거나 이직 문제로 내부 문제를 말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처럼 현상 유지만으로는 이 조직이 나아갈 수 없으니 저라도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종시라는 ‘갈라파고스’
그는 정부세종청사를 공무원 조직의 상징물로 꼽는다. 수평적·연결적 조직이라는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옆으로 3㎞나 되는 건물을 지어놨지만 내부 사무실은 서열대로 앉는 칸막이 구조다. 직원 간 소통을 할 수 있는 중간 지대라곤 없는 공간. 겉과 달리 속은 과거와 똑같은 공무원 조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이라고 했다.
-2005년 행정수도 이전을 고시하면서 분권과 균형 발전,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목적을 내세웠습니다.
“그 의도가 구현됐느냐에 대해선 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형식은 50%, 실질은 70%, 전문가는 90%가 서울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에요. 세종시에서 일하는 중앙 부처 공무원은 현장과 소통하기에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는 거죠. 왕복 4시간 출장이 부담스러운 담당 사무관은 전문가와의 만남 같은 현장과의 소통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어요.”
-공무원 조직의 무능함이 계속되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똑같은 사회 문제가 반복될 겁니다. 어떤 문제가 터지고 나서 법안을 바꾸고 만드는 건 국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회를 움직이는 건 정부여야 합니다. 공무원이 해당 문제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해야죠. 하지만 관료제의 뿌리 깊은 무책임과 단기적 성과주의가 법률지원센터를 만들겠다는 식의 면피성 대책만 내놓게 만들어요.”
그는 “정부의 유능함은 기업의 성공이나 정치의 선진화만큼 국민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라고 했다. ‘대민업무(對民業務)’라는 말처럼 공무원의 업무는 우리 삶과 밀접하다. 그는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이나 1~2년마다 바뀌는 장차관보다 같은 분야에서 30년씩 일하는 공무원이 실제 정책을 만드는 전문적 기술 관료”라며 “공직 사회의 문제는 조직원들이 똑똑하지 않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으로 공무원 사회의 무능을 폭로한 노한동 작가.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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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성과주의 같은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 달라질까요?
“무조건적 성과주의가 정답은 아니라고 봐요. 신분 보장과 연공서열에 따른 자연스러운 승진, 조직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가 공무원 사회의 하방을 지지하는 정서니까요.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돼 있는데 ‘성과 안 내고 승진 안 하겠다’며 뻗대는 사람이 늘어나면 초가삼간 다 태우게 되는 겁니다.”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2년짜리 순환 보직제부터 보완해야 합니다. 원하는 직원의 경우 비슷한 분야에서 10~20년씩 장기 근무할 수 있게 하면 전문가가 되고 싶은 젊은 직원들의 자기 계발 욕구와 효능감을 채워줄 수도 있고, 정책의 품질도 높아지겠지요. 전문성은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는 무기도 됩니다. 상급자는 탄탄한 논리 앞에선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기 어렵고, 하위직은 추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항명할 수 있고요.”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공직 사회는 일을 못한다. 쓸데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진정한 개혁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무의미한 일을 그만둔 이 전직 공무원은 “나는 실패했지만, 나의 실패를 딛고 누군가는 성공담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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